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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이제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4-11-10 | 조회: 200

이제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3:16-19. 2024. 11/ 10주일 설교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 한복판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꿈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서 웬만큼 성공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가게에 원인 모를 불이 나서 값비싼 물건들이 모두 타 버렸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혀를 차면서 "참 안됐다. 이 집 주인은 정말 열심히 노력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런데 다음날 아침, 가게 앞에는 이런 글귀가 붙었습니다. "이 상점의 모든 것이 불에 타 버렸습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새롭게 출발하겠습니다. 주인 백."

거리를 지나가던 모든 사람들이 주인의 용기와 끈기와 당당함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이 정도의 기백과 끈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금방 재기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십시일반으로 그 주인을 도왔습니다. 돈도 꾸어주고 물건도 외상으로 대 주고 해서 얼마 되지 않아 그 주인은 금방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가게가 몽땅 불타 버린 후에 남들처럼 금방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 바닥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겠다고 결단하는 것은 실로 위대한 일입니다.

 

타고 남은 잿더미 위에서 모두가 절망하고 있을 때 거기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실로 위대한 사람일 것입니다. 처칠이나 에이브러햄 링컨 같은 이들만 위대한 사람이 아닙니다. 꺾일 듯 꺾일 듯 하면서도 꺾이지 않는 사람들, 다른 사람 같으면 절망하고 포기했을 그런 환경 속에서 꿋꿋이 다시 일어서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상황도 똑같습니다 모두 다 어렵습니다. 어렵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보는 사람은 희망의 길을 찾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좋은 환경 속에서도 어두움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어두움밖에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능성을 보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해 보이지만 불가능한 것만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다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을 향해 물어 봅시다.

나는 어떤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어떤 눈을 가지고 나 자신을 보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눈을 가지고 사랑하는 자녀들과 아내와 남편과 교회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당신의 시각이 곧 당신의 미래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눈에 보이는 절망적인 환경과 자신의 연약함을 뛰어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매이지 않고 오히려 믿음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장애물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 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서도 다시 일어서는 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하박국입니다. 하박국이란 뜻은 "포옹한다. 껴안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주전 600년 즈음에 활동했던 선지자라고 짐작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유다 왕국이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던 때였습니다. 주변 강대국들의 위협 속에서 유다 백성들은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바라며 부르짖었으나, 오히려 더 큰 혼란과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깊은 절망과 고뇌에 빠졌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탄원하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찌하여 악인이 의인보다 더 평안하고 번성한가?"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하박국은 인간의 시선으로 볼 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절망에 빠진 한 선지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질문들은 우리 삶에서도 여전히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러나 하박국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결국 깨닫게 됩니다.

하박국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대답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 단순히 상황을 무시하고 희망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라는 초대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와 의지입니다. 하박국은 모든 것이 무너지고 없어질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약속을 붙잡겠다고 다짐합니다.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한다고 하지만, 믿음으로 사는 게 때론 쉽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지금 하박국이 당한 환경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본문 16-17절을 보십시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여기 보면 부정어가 6( 못하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을지라도) 반복됩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3대 과실수가 무화과, 포도, 감람(올리브) 입니다. 과수원마다 애써서 지은 농사가 안됩니다. 밭도 마찬가지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다 짓밟혀버립니다. 이젠 어디를 찾아보아도 먹을 게 없습니다. 사람 먹을 것도 모자라니 가축들이 죽어 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우리에 양이 없습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습니다. 인간 조건으로 보면 완전 절망입니다. 끝장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감사할 수 있을지! 상식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원망하고 불안해하는 게 정상입니다. 감사의 이유가 다 사라져버린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건강하던 사람이 건강을 잃어버렸습니다. 부요하던 사람이 물질을 잃어버렸습니다. 권세와 지위가 있던 사람이 추락해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감사의 이유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박국은 없음의 소유에서부터 일어섭니다. 이 모든 것이 없을지라도 그리고 그는 감사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이처럼 두려움에서 일어나서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 하박국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축복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18절에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은 이 짧은 구절에 하나님을 두 가지로 표시합니다. 여호와’ ‘구원의 하나님 여기 여호와는 약속에 있어서 신실하신 하나님. 그렇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한번도 택한 자녀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는 약속에 있어서 신실하신 분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최악의 것을 최상의 것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이 그로 하여금 두려움에서 절망의 골짜기에서 낙심의 자리에서 일어서게 한 것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열매 맺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적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던 하나님, 그리고 모든 것을 회복시킬 수 있는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그는 확신할 것입니다.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붙들어야 합니다. 때로 내게 부딪힌 어려움, 고난, 이것은 전혀 무가치한 것만 아닙니다. 때때로 고난은 우리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영원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기회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바라봄으로 영원한 축복에 이르게 됩니다.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소망이라는 이 믿음은 지금 어떠한 환경이 나를 덮을찌라도 그것을 딛고 일어서게 됩니다.

 

. “찌라도의 신앙

 찌라도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 비록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이 없을찌라도로 끝나는 신앙은 줄여서 찌라도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하박국 선지자 외에도 찌라도의 신앙을 가지고 산 사람들이 여러 명 있습니다. 먼저 다니엘 3장을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나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두라 평지에 금 신상을 세워놓고 모든 백성에게 절하라고 했습니다.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죽이겠다고 하여 다니엘의 세 친구는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느브갓네살 왕이 질문했습니다.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 3:15).

너희 하나님이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서 건져낼 능력이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세 사람이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 3:17-18).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풀무불에서도 얼마든지 건져낼 능력이 있지만 설사 그런 기적을 베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결단코 우상숭배는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찌라도의 신앙입니다.

 

다윗도 시 23: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인생도 참 험합니다. 사울의 핍박. 압살롬의 반역, 그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두려움과 좌절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몸에 괴롭히는 육체가시가 있었습니다.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질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 번씩이나 그것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럴지라도 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의 선한 목적임을 깨닫고 만족했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 내가 약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할 수 있기 때문에 약하게 만드셨다는 응답을 받고 바울은 만족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상황이 어디까지 갈 때까지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믿음의 수준일 수 있습니다. 얼마만큼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은혜의 수준일 수 있습니다. 세상을 다 얻고도 불평하며 불행해 하는 사람이 있고 세상을 다 잃고도 하나님 한분으로 감사하며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감사입니다. 어떤 조건이나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처한 상황과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만 믿고 드리는 감사입니다.

 

.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힘이기 때문입니다. - 아멘

이 힘을 가져야 영혼 없는 감사가 아니라 견딜 수 없는 진정한 감사가 일어납니다. 남몰래 눈물 흘리는 사람들. 어디 그것뿐입니까? 우리 교회에도 가족이 불치의 병에 고통당할 때, 아무리 하루에 수십번 마음을 고쳐먹어도 또 불안이 순식간에 덮쳐 오면 그만 두려움에 쌓이는데 그 환경 가운데 감사가 쉽게 나오나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지 않겠어요. 자신감은 점점 없어지고/ 불안해지고/ 두려워지고/ 사는 것이 겁나고/ 무능한 자신/ 남처럼 앞서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럽고/결국은 우울증에 빠지는 비참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힘이요. 힘입니다. 세상을 살게 하는 힘이요./벌떡 일어나게 하는 힘이요./자존심을 살려주는 힘이요,/절대로 기죽지 않는 힘이요, 비틀거릴 때마다 붙들어 주는 강한 손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면서 살 수 있는 감사하는 만드는 힘입니다. 힘이 필요해요, 세상에 살게 하는 힘이 필요해요, 내 안에 없는 힘이 필요합니다. 어디서 이 힘을 얻을 수 있습니까? 십자가를 향해서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은혜 앞에 내 나약함, 무력함으론 남도 살리지 못하지만, 나도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붙들고 그분의 그 놀라운 사랑을 내 마음에 다시 한번 체험할 때, 힘이 생깁니다.

 

이제 19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은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의 마지막 고백은 하나님이 자신의 힘이시라는 확신입니다. 이 확신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하박국은 자신이 직면한 현실이 무겁고 어두울지라도,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을 강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하박국에게 영적 승리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능력이 우리를 날렵하고 강하게 해주심을 상징합니다. 사슴은 어려운 지형에서도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험한 세상을 걸어갈 때,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더불어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라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영광스럽고 존귀한 자리에 오르게 됨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 땅의 환경이 아니라, 하늘의 시선으로 하나님께서 이끄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를 바라보는 삶을 뜻합니다.

 

이제 추수감사주일을 준비하면서 지난 1년을 돌아보십시오. 저는 감사는 기적의 씨앗이라는 말씀을 이 강단에서 수없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감사는 억지로 해도 좋습니다. 저의 경험에 결코 손해가 없습니다. 그 감사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추수 감사주일에 드릴 감사헌금 봉투에 보면 5가지 감사를 쓰라고 했습니다. 한해를 돌아볼 때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안다면 마땅히 감사가 일어나지 않겠나요? 감사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힘든 시대 먹고 살 것 때문에 걱정하고 한숨이 깊어만 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큰 저주는 먹을 것을 얻지 못한 목마름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박국처럼 삶의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을 힘으로 삼고, 그분의 신실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환경이 어떠하든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믿음 속에서 우리의 발걸음이 사슴과 같이 날렵하고 강건하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복된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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