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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2024~2009

어떠한 감사로 보답할꼬-추수감사주일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4-11-19 | 조회: 151

어떠한 감사로 보답할꼬 살전 3:9. 2024. 11/17. 추수 감사주일

 

2024년도가 엊그제 시작을 한 것 같았는데 벌써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무엇보다 희망을 안고 살아온 한해였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보면 얼마나 많은 사고와 사건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어느 통계 자료를 보면 작년 한해 동안 개인 사업장이 1만곳이 문을 닫았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보게 됩니다. 정치는 한국 사회에 희망을 안겨다 주는 것이 아니라 혼란속으로 빠뜨리고, 국제적으로 전쟁에 여파로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릅니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의 여파는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이 마음이 불안해지고 메말라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그리고 5000만 인구 가운데 우울증 환자가 500만이 되는 이 현상을 보면서 참 마음이 시리도록 아파옵니다. 오늘 추수 감사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에게 감사하는 삶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 가운데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 환난의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에는 환난이나 고난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자주 등장합니다.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많은 환난 속에 있었다. 2:14 너희 동족에게도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3:7절에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그리고 살후 1:4절에 보면 이들이 처한 상황이 어떤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절에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환난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당하는 시련 때문에 겪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반면 박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외부에서 주어지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신앙인이 신앙으로 살려 하는 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당하는 고통을 말합니다. 지금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그런 환난과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이 핍박이란 사건은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를 믿으면 잘 살 줄 알았고, 복 받을 줄 알았지 예수 믿어서 이렇게 된다면야 그 누가 믿겠습니까?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복 받는 것은 두고라도 예수를 믿자마자 이렇게 엄청난 핍박을 맞게 됩니다. 예수를 믿어서 복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이익을 만납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대부분이 보금자리 속에서 "이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이 정도면 행복해. 나는 더 이상 바라지도 않아. 나는 만족해.“하며 꿈 같은 세상을 보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이 이상이 생기는 것을 봅니다. 어떤 경우 에는 마음속에 몹시 불안한 감정이 일어나서 잠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업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부부간에 심각한 문제가 개입될 때도 있습니다. 자녀에게 부모가 원치 않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아마 우리 중에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참으로 신비로운 말씀이 있습니다. 왠만하면 포기할 법도 한데, 오히려 고난 속에 태어난 영롱한 진주처럼 절망의 환경 속에서도 고난을 헤치고 당당하게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바울은 살전 1:2절에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라며 감격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데살로니가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감사의 바다로 물결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영할 수 없는 오늘의 상황, 기뻐할 수 없는 오늘의 고통, 감사할 수 없는 오늘의 아픔과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나 롬8:28절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약속을 믿습니다. 우리의 처한 지금의 상황은 마침내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인생 한복판에 만난 어떤 위기와 어려움도 넉넉하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닌 진정한 감사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통에는 뜻이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고난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우연은 없습니다. 우연 속에는 필연이 있고 그 필연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참새 한 마리도 그분의 허락 없이는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하나님께서 세신 바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있습니다. 이 민족의 어려움, 또 가정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고통과 오늘의 역경 중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과 당신의 계획을 이루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이 소망만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자리에서도 감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바울은

 

. 어떠한 감사로 표현을 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실 마음의 부담을 가진 교회입니다. 바울이 2차 선교 여행때에 약 3주 동안, 한달도 채 머물지 못하면서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그 결과 고위층의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귀부인들이 바울과 실라가 전한 예수를 믿게 됩니다. 정말 엄청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을 시기하는 유대인들이 이 데살로니아 지역까지 와서 엄청난 방해를 합니다. 결국 바울 일행은 야밤도주를 하게 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황입니까? 불과 3주의 짧은 기간 동안 제대로 증거도 못한 채, 마치 광야로 피신한 만삭이 된 여인이 아이를 낳고 탯줄을 짜르고 아이를 광야에 내두고 간 그런 모습입니다.

 

그런데 디모데를 통해 전해진 소식은 뜻밖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염려스런 교회, 분열하는 교회가 아니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이제 막 시작한 교회가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거듭 감사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여러 가지 불안하고 염려스러운 점으로 인해 할 말이 많았을 것 같은데 사도 바울은 할 말이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힘있게 복음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 앞에 인간의 언어로는 무슨 말을 할 수 없는 최고의 감격이 일어난 것입니다. 8절에서 들린다는 동사는 헬라어로 천둥소리’, ‘나팔소리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조용히 전하지 않았습니다. 천둥소리, 나팔소리와 같이 거침없이 전했습니다. 핍박과 환란 가운데서도 이렇게 복음을 증거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로 인해 바울은 9절에 보면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바울은 자신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감사의 마음을 느끼며, 그 마음을 "어떠한"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어떠한"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바울이 인간으로서 느끼는 깊은 감사와 그 감격을 어떻게 하나님께 드려야 할지를 고민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고난과 핍박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바울은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꼬"라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경험할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보십시오. 그 속에 감격이 흐르고 있지 않습니까? 기쁨이 차오르고 있지 않습니까? 무언가 너무 고맙고 좋아서 어찌 할 줄을 모르는 모습을 눈앞에 그릴 수 있지 않습니까? 바로 예수 믿는 사람은 이런 감격과 기쁨을 소유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무슨 말입니까? 사실 그는 지금 도무지 감사할 형편이 못됩니다. 여러분,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바울은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사람입니다. 가진 것이 없기에 감사할 거리도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여러분, 무엇이 이 바울로 하여금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것도 삶에 지치고 힘겨운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보답할꼬’’하는 감사의 고백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보답할꼬?

여기 어떠한 감사로 보답할꼬라는 표현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을 굳게 세워주신 하나님께 무엇으로든지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그 십자가의 은혜 앞에 어찌 할바를 모르는 감격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보십시오. 그 속에 감격이 흐르고 있지 않습니까? 기쁨이 차오르고 있지 않습니까? 무언가 너무 고맙고 좋아서 어찌 할 줄을 모르는 모습을 눈앞에 그릴 수 있지 않습니까? 바로 예수 믿는 사람은 이런 감격과 기쁨을 소유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무슨 말입니까? 사실 그는 지금 도무지 감사할 형편이 못됩니다. 여러분,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바울은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사람입니다. 가진 것이 없기에 감사할 거리도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여러분, 무엇이 이 바울로 하여금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것도 삶에 지치고 힘겨운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보답할꼬’’하는 감사의 고백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살벌합니다. 죄의 힘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귀는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위협을 당하는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자고 일어나는 것, 숨을 쉬고 있는 것, 맥박이 정상적으로 뛰고 있는 것, 피가 순환되고 있는 것, 밥을 먹는 것, 밥을 먹은 것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병원에 가 보면 힘겹게 누워있는 환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서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가족들이 저녁에 모두 무사히 귀가하는 것도 기적이고,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남편이라는 존재, 아내라는 존재로 인해 감사해보십시오. 술에 취한 남편이 집을 찾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믿음 생활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구박하지 마십시오. 교회 나가는 것, 반대 안 하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교회까지 같이 나와준다면 더더욱 감사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수수방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 속에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를 첨단 장비로 살려내려고 애를 써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억만장자라도 생명의 연장을 하루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이 시간 한번 지난 세월 하나님이 내 생애 가운데 베풀어주신 은혜를 한번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말씀을 묵상하면서 필름처럼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니까 인생의 모든 걸음걸음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 한해도 많은 사고 사건 속에 우리가 살아가지만, 한번 저 공중나는 새와 들에 맺힌 열매들을 보십시오. 공중의 새들이 먹고 살기 위해 농부처럼 농사짓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야생화들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 위해 옷을 지어 입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입히시기에 저들은 염려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새보다 소중히 여기시고 야생화보다 더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이제 추수감사주일에 지나온 한해를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기쁜 일도 있고,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오늘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영광 돌리시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감사는 지난 번 태신자를 오늘 다시 스탠딩 테이블에 함께 초대해서 이분들과 함께 예배드린다는 것이 가장 큰 감사가 아닙니까? 이 감사의 계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함으로 감사를 회복하시고 행복한 인생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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