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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성탄을 맞이하는 자세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4-12-24 | 조회: 154

성탄을 맞이하는 자세 2:1-12. 2024. 12/21

 

오늘 우리는 탄핵 정국의 혼란 속에서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마음들이 무거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성탄절에는 세상 문제에 휘둘리지 않고, 예수님의 탄생이 주는 희망과 평강 안에서 감사와 소망의 자세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오늘 성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하지만, 아들을 보내는 그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 아들이 내려가면 반드시 죽을 것인데, 그것도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을 것인데, 죄의 저주를 뒤집어쓰고 죽을 것인데, 그 아들을 보내는 하나님의 마음은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날이라는 것을 우리는 한 번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크리스마스 메세지는,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 흘리시고 나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풍성한 영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합니까? 성령의 인도가 감사합니까? 예수님 안에서 얻은 영원한 생명에 감사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드리시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함께하는 본문에 보면 2,000년 전 유대 땅에 오신 만왕의 왕이신 아기 예수를 만날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그분을 만나 뵐 수 있는 축복의 기회를 놓쳐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시대에 우리 곁에 가다 오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불행한 신앙인이 되지 않도록 준비하는 신앙으로 다시 한번 결단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날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 첫 번째 반응은 헤롯왕입니다.

헤룻은 온 세상의 구세주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났다는 소식을 동방박사로부터 들었을 때 굉장히 당황한 것 같습니다.  2-3절에 보면 동방의 박사들이 헤롯궁을 찾아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메시야가 어디에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이 물음은 한 순간에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을 소동케 했습니다. 헤롯왕은 자기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결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가 지금 유대인의 왕인데,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다는 것은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그는 에돔 사람으로서 로마의 권력에 편승하여 유대인의 왕이 된 사람이 아닙니까? 헤룻은 자기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도 짓고,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세금도 감면해 주었고, 자기의 금 접시를 녹여서 백성들의 식량을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러나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면서 유대인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을 없애기 위해 300명의 법정 위원들을 살해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를 반대하는 장모나 아들들에게도 쉽게 칼을 휘둘러 서슴없이 죽이는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또 그는 막강한 권력을 이용하여 10명의 아내를 거느리면서,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근친상간도 서슴없이 하던 악한 왕이었습니다

 

여기 2절에 "소동했다" 말은 동요하다. 혼란스럽다라는 뜻으로 당시 예수님 탄생에 시기를 잘 반영해 주는 사회적 현상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온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지만, 동방 박사의 방문과 새로운 왕의 탄생 소식은 정치적, 사회적 불안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헤롯 왕은 이 소식에 크게 위협을 느꼈고, 그로 인해 온 예루살렘이 동요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권력자들의 불안과 백성들의 불안이 뒤섞인 복합적 상황을 보여줍니다. 오늘날의 탄핵 정국에서 '소동'은 권력의 변화나 체제의 불안정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혼란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위기와 사회적 갈등이 겹쳐지며 국민들은 방향성을 잃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입니다.

 

불안하게 하다는 의미로 당시 그 누구보다 헤룻에게는 민감한 문제입니다. 그는 정치적인 수완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빨리 이 소문의 진상을 파악해서 예루살렘 주민들의 민심을 수습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 소문으로 해롯 왕은 심기가 극도로 불편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헤롯왕은 갑자기 박사들을 조용히 불러 말합니다. 7,8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헤롯왕도 아기 예수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조상 대대로 예언되어 온 아기 예수 탄생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또 헤롯왕은 그분이 유대인의 왕으로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분명히 알 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아기 예수께 경배한다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메시야이신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16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헤롯왕은 겉으로는 '나도 아기 예수께 가서 그에게 경배하리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습니다. 그는 겉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환영했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자기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 서기관과 제사장들의 반응

이들은 당시의 대표적인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전문적인 성경학자들입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태어난다는 소식을 알고도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경 지식은 풍부했지만, 정작 메시아를 찾으려는 열정과 믿음은 없었습니다. 여기 보면 헤룻이 물어 봅니다. 도대체 어디서 출생하는가? 헤롯은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서기관들에게 묻습니다. 그들은 일사천리로 대답합니다. 4-5절에 보면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이 사람들은 성경의 내용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내용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저들은 아기 예수, 만왕의 왕이 오셨다고 했을 때, 그 지명까지 알고 있었지만, 예수를 찾아가기는 커녕 의도적으로 무관심했고 바로 이 사람들이 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는 자리에 서지 않습니까? 성경을 가장 잘 알았던 사람들이 아기 예수를 외면하고 반대하고 끝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자리에 이릅니다.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 지식과 신앙은 다른 것입니다. 이들 종교인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허수아비처럼 무관심했던 저들의 얼굴을 보십시오.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것 가운데 하나가 무관심입니다. 습관적으로 예배하고 찬송하고, 습관적으로 헌금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 회개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나왔으니까요. , 반성도 없습니다. 열심히 일했으니까요.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흥분이 될리 없습니다. 그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죽으셨다는 데도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오늘 교회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한 번도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려본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예수 믿은 오랜 경륜만 자랑합니다. 예배를 종교적 악세사리, 주일 행사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을 교회 생활의 전문가라고 착각합니다. 바로 그 제사장이 저 같은 목사의 얼굴일 수 있습니다. 그 서기관이 장로의 얼굴일 수 있고 권사나 집사의 얼굴일 수 있습니다.

 

서기관과 제사장의 모습은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게 경고를 줍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탄핵 정국으로 많은 이들이 방향을 잃고 있는 이때, 우리가 신앙적 형식주의에 빠져 있다면 세상에 소망을 전할 수 없습니다. 성탄은 우리의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시점입니다. 말씀을 머리로만 알지 말고, 삶에서 실천하며 메시아를 향한 참된 경배의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 동방박사가 나옵니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을 진정한 왕으로 섬기고 경배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난 신실한 이방인들이며, 그들의 예배와 순종은 메시아를 향한 진정한 경외심과 겸손을 상징합니다. 또한, 이들의 모습은 예수님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자로 오셨음을 보여 줍니다. 동방박사들에게는 왕을 만나보고 싶은 강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누구냐'하는 문제는 아직까지 확실하게 풀려지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그러나 많은 성서학자들은 당시 상황을 보아서 바벨론 출신의 천문학자나 점성학자들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당시 바벨론은 천문학과 점성학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었고, 바벨론에는 약 500여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 살았던 탓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던 메시아 관한 성경의 예언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바벨론에서 온천문학자들이었다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까지는 굉장히 먼 길입니다. 하루 이틀에 올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별을 따라 온 사람들입니다. 별은 밤중에만 나타납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밤중에만 여행을 해야 했습니다. 때로는 험한 산을 넘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져 있는 넓은 들판을 지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달이 없는 밤에는 돌멩이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가시덩쿨에 찔리기도 했을 것입니다. 때로는 강도나 도적떼의 위협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까지 오는 길에 어떤 난관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많은 고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달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도 먼 길을, 더군다나 고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렘까지 왔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속에는 오직 한 가지 열망밖에 없었습니다. 그건 새로 태어나신 왕을 만나보고 싶다는 열망입니다. 열망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그리고 그 열망을 따라가면 희망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보고 싶은 열망이 있어야 합� ��다. 우리에게 열망이 있으면 왕이신 하나님을 만나 뵐 수 있습니다. 8:17절에 "나를 사랑한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뿐만아니라 그 먼길에 그냥 온 것이 아닙니다. 11절에 보면 그 별이 멈춘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은 가장 귀한 것들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미리 준비한 보배합을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아기 예수님에게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들이 아기 예수님에게 드린 예물들은 매우 귀하고도 값진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예물들은 상징적인 의미도 갖고 있었습니다. 찬송가 116장을 보면, 이와 같은 가사가 나옵니다. 베들레헴 임금께 나는 황금 드리네 영원토록 모든 백성 다스려 주소서.” 황금은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합니다. 말하자면 황금은 모든 백성을 다스리실 왕으로 나신 예수님에게 드려진 것입니다.

 

거룩하신 구주께 나는 유향 드리네 만국 백성 찬송 드려 만유 주 섬기세.” 30:37말씀을 보면, 본시 유향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을 상징합니다. 말하자면 유향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드려진 것입니다. 주의 죽을 몸 위해 나는 몰약 드리네 세상 모든 죄인 위해 십자가 지셨네.” 19:39 말씀을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기 위하여 몰약을 가지고 왔습니다. 몰약은 예수님의 인성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몰약은 사람이신 예수님에게 드려진 것입니다. 물론 박사들은 그들이 아기 예수님에게 드린 예물의 상징적인 의미를 충분히 깨닫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서, 그들은 아기 예수님에게 매우 적절하고도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귀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대상16:29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하나님에게 합당한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서의 제물은 예물을 의미합니다.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한 요소입니다 .빠져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9, 10절을 보면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여기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오늘 본문은 박사들에게 있었던 큰 기쁨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우리는 이 단어들을 통해서, 박사들이 그리스도의 별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순종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배의 참된 본질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 그들은 목숨걸고 베들레헴까지 와서 주님을 경배하고 황금과 몰약과 유향을 드리고 이제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는데, 꿈을 통해 한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헤롯왕을 만났을 때, 헤롯왕은 "베들레헴에 가서 자세한 사항을 알아보고 메시야를 찾거든 돌아올 때에 나에게 보고하도록 하라"고 했는데, 꿈에 "헤롯왕에게로 돌아가지 말고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가라" 지시가 주어졌습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은 그 말씀대로 다른 길로 해서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바로 이것이 참된 경배와 참된 예배의 모습입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습니다. 만약 그들이 경배는 멋있게 했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헤롯왕을 만났다면 그들의 경배는 불완전한 경배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첫 번 크리스마스를 맞는 다양한 사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기쁜 소식으로 다가오셨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비극적인 삶의 행렬의 선두를 장식했던 헤룻이나, 서기관들처럼, 이 아침! 여러분 가운데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분은 안 계십니까? 또 알 것은 다 알면서도 그 이상은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니십니까? 성경의 가장 슬픈 구절 중의 하나는 요1:11절이라 생각합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예수께서 자신이 만드신 이 땅에 오셨으나 사람들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크리스마스 메세지는,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 흘리시고 나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풍성한 영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합니까? 성령의 인도가 감사합니까? 예수님 안에서 얻은 영원한 생명에 감사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드리시기를 원하십니까? 가장 존귀한 것으로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황금이 없으면 여러분의 몸을 드리십시오. 유황이 없으면 당신의 사랑을 드리십시오. 몰약이 없으면 여러분의 생명과 여러분의 인생을 그 앞에 드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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