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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위대한 작품입니다. (엡2:8-10) 2010. 8.29 에베소서강해5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0-08-30 | 조회: 2091
당신은 위대한 작품입니다. 엡2:8-10. 2010. 8/29. 주일 예배



우리말에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준치’란 생선 중에서 가장 맛있다고 하여 진어(眞魚)라고도 불리는 생선입니다. 이 고기가 맛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여 값이 꽤 비쌌습니다. 그래서 옛날 서민들이 이 고기를 먹어보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어쩌다가 부잣집에서 상하여 먹지 않고 버려진 준치를 얻게 되어 먹을 때, 그 맛이 일품입니다. 그래서 조금은 상했지만 그 맛은 준치 맛 그대로임을 나타내는 말로 ‘썩어도 준치’ 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생선도 썩어서도 맛이 변하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의 시민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 환경이나 조건이나 사람에 따라 맛이 변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결코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자가 아닙니다. 한 평생 적당히 살다가 그냥 그렇게 죽고 썩어 없어질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존재가 아닙니까? 그저 돈이나 쫓다가, 세상 쾌락이나 쫓다가,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으로 살다가 죽어갈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2:10절 상반 절을 보면 우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무엇이라 합니까?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표준 새번역과 공동번역에는 “우리는 그의 작품이라”고 간단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poem'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시라는 단어가 아닙니까? 우리의 언어를 가장 함축있게 만든 것이 ‘시’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보통 작품이 아니고 시적인 작품이고 아주 놀라운 예술적 작품이요, 걸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선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의 작품 전시장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주일 예배로 모인 이 시간은 어떤 날입니까? 하나님의 작품 전시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과 저가 다 작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아겠지만, 작품은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상품 가치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 된 밀레의 ?만종?그림이 1조원이 넘는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 1천 프랑에 국외로 팔려 나갔으나,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다시 프랑스로 팔려 왔을 때는 수천 배로 값이 뛰었고 지금은 1조 억원의 기치가 있다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림 한 장에 어떻게 1조원을 넘을 수 있겠습니까?



1천억 한다는 말은 들어본 일이 있지만 값어치가 비싸도 너무 비쌉니다. 그런데 해설을 그렇게 달았습니다. ?이것은 값어치가 1조가 넘는다는 것이지 실제로 팔면 얼마 될지 모른다.?10조가 될지 20조가 될지 모른답니다. 그렇게 귀하답니다. 사실 밀레는 이 그림을 그리는데 종이와 물감 다 합하여 75달러밖에 안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그림의 값은 계산할 수가 없는 역사적인 유물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누가 그렸느냐에 따라 이런 엄청난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성경은 선언합니다. 옆에분들 하고 인사하세요? “당신이 이렇게 위대한 작품인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참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입니다. 자동차 하나 만드는데 드는 부품이 1만 3천 개인데, 인간의 몸을 만드는데는 100조개의 세포조직, 25조개의 적혈구, 250억개의 백혈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인간을 하나도 꼭 같지 않게 지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자동차와 다르게) 인체의 신비를 소개하는 글에 보니까 지금 이 지상에 67억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 중에 지문이 같을 가능성은 640억대 1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문 검사를 통해 범인 색출이 가능한 것이지요. 하나도 같은 사람이 없이 우리 모두를 독특하게 다른 걸작품으로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진정으로 걸작품다운 저 마다의 인생을 살아갈 것을 기대하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쉴 새 없이 좌절하고 넘어지며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그런 걸작품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1. 무엇보다 자존감의 회복입니다.

여기 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기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호의"를 뜻하는 말입니다. 은혜는 기독교의 대명사로서 복음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를 “은혜의 종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은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고 싶어서 애를 쓰는데도 결국 믿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에 비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공로 없는 우리에게 영원히 사는 축복을 주시려고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프리 패스를 주신 것,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이 구원이 우리의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이 선물을 받아 드리는 방편이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믿음은 공로나 행위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받아드리는 우리의 응답인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달리 살길이 없어 “사람 살려!” 소리칠 때 구조대원이 내민 손을 잡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구조대원의 내민 손을 잡는 것이 무슨 공로나 업적이겠습니까? 그것은 구원자의 은혜에 반응하는 절박한 응답인 것입니다.



대중가요 가수에서 목사로 변신한 이종용 목사님(미국 LA 코너스톤교회 담임)의 이야기입니다. ‘너’ ‘겨울아이’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등을 부르면서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풍미했던 인기가수였습니다. 1975년 가요대상 시상식에서 최고 가수상을 받는 날에 대마초 소지죄로 구속 수감됐습니다. 절망 가운데 있었는데, 감옥에서 사형수를 만납니다. 그가 만든 구리 십자가를 건네주면서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나는 사형당하겠지만, 당신은 곧 출소할 테니까 예수 잘 믿고 내 몫까지 살아주시오!” 그 말을 듣고 지나온 인생을 회고해 보니까 하나님을 떠나 사던 인생이 얼마나 쓰고 허무한지 절절히 깨달아졌습니다. 사실은 화려한 인기 스타 생활의 이면에 허무감이 가득했기에 대마초에 손을 댔던 것입니다. 학창 시절에는 YMCA 활동도 했지만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던 자신을 생각하며 회개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 앞에 돌아왔고,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 공부를 마치고 목사가 된 겁니다. 그가 수년 전 펴낸 간증집의 제목이 이겁니다.「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과거 가수 시절 불렀던 노래 제목입니다. 그 때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몰랐는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과거의 인생이 정말 바보 같았음을 고백한 겁니다. 지난 날 자신이 한 행동이 어떤 것인지 모르다가 하나님의 은혜 앞에 붙들리고 새로운 인생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볼 때, 엄청난 감격에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자신은 더 이상 패배자가 아닌, 하나님의 작품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들입니까? 성 어거스틴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높은 산과 바다의 거대한 파도와 굽이치는 강물과 저 광활한 우주의 태양과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는 감탄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놀라워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내 존재가 얼마나 신기한 작품인지 감탄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겉으로는 세상 사람들과 별차이가 없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실상에 있어 우리는 목이 멜 정도로 감격스러운 사랑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존재들입니다. 오늘 날도 세상 사람들은 믿음의 눈이 없기에 우리의 변화 된 신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기에 서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똑똑히 확인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야! 저 형제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구나! 정말 아름답다! 저들에게 일어난 신분의 변화! 하나님이 주신 신분의 변화가 참으로 놀랍구나!”



옆에 있는 형제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아름다운 신분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옆에 앉아 있는 남편을 보십시오. 예수를 믿는 이상 그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으로, 학식으로 콧대가 올라가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이 사실에 대단한 긍지를 느끼는 것입니다. 이 긍지가 없다면 우리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수십 억을 떡 주무르듯, 푼돈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틈에서 따진다면 우리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으로 프라이드를 말한다면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 앞에나 당당히 설 수 있는 긍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을 순시할 때 도정 보고를 받은 후 그 지방의 유지들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조그마한 어느 시골에서 지방 유지로 뽑혀 올라온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자기 마을로 돌아가서 그때 일에 대해 얼마나 자랑을 늘어놓았던지 부러운 마음으로 듣고 있던 어떤 노인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여보게, 그 곳에 가서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기에 이렇게 입이 마르게 자랑을 늘어놓는 건가?” “설렁탕 한 그릇을 먹었지요!” “예끼, 이 사람. 설렁탕 한 그릇 가지고 뭘 그렇게 자랑을 늘어놓는가?” “그게 아닙니다. 제가 지금 자랑하는 것은 설렁탕을 먹었다는게 아니라 대통령과 한 상에 앉았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일화지만 여기에 참으로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설렁탕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나 다름없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영원히 변치 않는 자랑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는 이 사실 하나 때문에 우리는 절대 기죽지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엄청난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아들까지 죽게 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는데 우리가 왜 기가 죽어 삽니까? 왜 얼굴을 찡그리고 삽니까? 비록 고달픈 인생을 살면서 지쳐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얼굴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영광스러운 긍지로 빛나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명의 부름 앞에 서야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작품으로 한 생을 살아갈 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작품의 가치를 드러내야 합니다. 여기 다시 10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공동번역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 작품의 가치를 드러내야하는 삶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명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이 세상에 올 때에 하나님께서 “네 평생에 이루고 오너라”하고 부탁하신 거룩한 심부름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한평생 내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거룩한 숙제입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다른 업적들을 많이 이루었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절대절명의 숙제를 말합니다.



한 어머니가 요리를 하다가 마침 소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어린 딸에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얘야, 가게에 가서 소금 한 봉지 사오너라.” 어린 딸은 돈을 받아 들고는 가게로 갔습니다. 가게에 들어서자 평소에 먹고 싶었던 각종 과자들과 수많은 물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손에는 돈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딸은 엄마의 심부름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들만 실컷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눈이 빠져라 딸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사 오라는 소금은 사오지 않고 엉뚱한 과자만 잔뜩 사온 딸을 보고는 기가 막혀 물었습니다. “너, 소금은 어디 있니?” 사명이 무엇입니까? 다른 것 사고 싶은 유혹이 아무리 많아도, 엄마가 사 오라는 소금을 사 오는 것, 이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토크쇼에 최고의 스타가 비로 오프리 윈프리가 아십니까? 흑인에다 헤비급 선수처럼 뚱뚱한 여인입니다. 제가 좋게 봐 주어도 매력이 없는 여성입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요!! 미국의 유명한 시사 잡지 타임지가 미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을 선정될 정도로 인기가 있습니다. 그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시청자가 어림잡아서 천만 명이 넘습니다. 그녀가 가난한 보육원을 방문하여서 그곳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10초만 이야기하면 다음날 수십 억의 기부금이 들어옵니다. 그녀가 무슨 책을 읽었다고 하는 말 한마디만 하면 다음날 그 책은 미국의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그런데 그녀의 라이프 스토리를 알면 더욱 놀라게 됩니다. 그녀는 사생아입니다. 할머니에게 맡겨져 학대 속에 자랍니다. 아홉 살 때 성폭행을 당했고, 열네 살 때 사생아를 낳습니다. 마약도 했습니다. 그러다 다행히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매일 기도하는 가운데 인생이 변했습니다. 사람들이 종종 이렇게 조롱합니다.?당신 사생아지? 마약도 했다며? 사생아도 낳았다지?? 그러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그렇소. 그게 바로 오프라 윈프리요! 그러나 내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은 위대하십니다!“ 통쾌할 정도로 멋진 대답입니다.



그녀의 자서전 ?이것이 사명이다?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오프라 윈프리의 네 가지 인생철학이 있습니다. 첫째,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픔을 겪는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세 번째, 남보다 설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네 번째, 남보다 부담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바쁘십니까? 정말 여러분은 나를 이 땅에 보내신 그분의 뜻을 이루느라고 바쁘고, 그분께서 맡겨 주신 일을 이루기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까? 아니만 나 하고 싶은 일, 남에게 칭찬 들을 일만 하느라고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얼마나 많이 일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해야 할 사명을 얼마나 이루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칭찬을 들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내가 구원 받은 것,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처럼 엄청난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제 우리가 그 은혜 앞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이제 철부지처럼 신앙생활 하지 말고 이제 나에게 맡긴 사명을 위해 보람차게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한 생명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전도가 아닙니까? 오늘 존 와나메이커 동영상도 보셨지만, 우리가 시대 앞에 믿음을 가진 자로 살아갈 때 그 한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새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일 학교 교사를 본업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장관 자리를 오히려 부업으로 여기는 이 모습 앞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이것이야 말로 무엇을 먹어도 들어도 마셔도 가져보아도 갈증만 더 하는 세상에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교회는 추수의 계절을 맞이하여 9/3째 주일에 무결석 주일로 삼았습니다. 지금까지 교회 등록을 한 모든 교우들이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다 나와 예배를 드릴 때 얼마나 감격이 일어나겠습니까? 여러분의 조그마한 관심 하나로 얼마든지 이 일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작품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만든 창조의 걸작품입니다. 아-멘. 나를 구원의 자녀 삼기 위해 당신의 단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죽여서까지 그 귀한 생명과 맞바꾸신 엄청난 희생의 댓가의 선물이 바로 나입니다. 아-멘



그 분은 나를 절대로 포기하지도, 놓치지도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굴복시키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주저앉히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약하게 만들겠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은 내 인생 한 가운데 계셔서 나를 붙잡고 모든 것을 넉넉하게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 이 가을에 우리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에 희망을 노래하며, 희망을 연주하며, 주님 나라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으로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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