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노라 (엡3:1-13) 2010. 9.12 에베소서강해7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0-09-13 |
조회: 1820
예수 믿는 사람이 제일 기뻐해야 할 이유를 먼저 찾는 다면, 내가 구원 받았다는 것이 아닙니까? 나의 모든 죄가 용서 받았다는 것, 아닙니까?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하시고 자기 자녀 삼으셨다는 것이 아닙니까? 천국이 내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할렐루야!! 저는 정말 우리 동성 교회가 이런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작은 예수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이 광진구를 복음으로 확 뒤짚어 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그렇게 사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본문을 보면 바울이 얼마나 멋지게 변화의 인생을 걸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는 자기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고백합니다. 이것은 상상이 안가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바울이 자기를 무엇이라 고백합니까? 7절을 보십시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 일꾼.
8절에는 무엇이라 고백합니까?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가장 작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자기는 성도들을 지도하는 사도입니다. 자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성도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자기는 그들보다 큰 자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그들보다 결코 큰 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고전 15:9절에 보면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창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바울은 예수님의 12 사도보다 늦게 사도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고전 15:10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사도들 보다 더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가장 많은 교회를 개척했고, 가장 방대한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신약 성경 27권 중에 절반이나 기록할 정도로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제일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 누구도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결코 큰 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딤전1:5절에는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교회에게 쓴 것이 아니라 디모데에게 개인적으로 쓴 편지입니다. 자기 제자에게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자기가 과거에 행했던 부끄러운 일들을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너무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혈통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대의 초대 왕 사울과 같은 베냐민 지파의 자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왕손입니다. 게다가 그는 당대 3대 대학 도시였던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타트르스 중 한 군데인 타트르스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철학의 진수를 맛본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학문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는 유대 율법의 대가인 가말리엘 문화생입니다. 어찌 그 뿐입니까?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장악했던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몇 안 되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대단한 특권층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도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크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정죄했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그런 자만심으로 꽉차있는 그가 어떻게 자신을 일군으로, 성도보다 못한 자신이라고 이야기를 하며,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 것이 없는 사도라고 할 수가 있므며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깊은 감옥에서도 나는 일군이라고 당당할 수가 있습니까? 도대체 이런 변화가 어떻게 가능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7절에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자신이 일군이 된 것은 순전히 ‘은혜의 선물’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히브리어를 보면 ‘구부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여러분이 땀 흘리며 일하고 있을 때 그곳을 지나가던 왕이 등을 두드리며 격려해 주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아마도 감격해서 어쩔 줄 모르고 흥분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의 힘입니다. 이런 벅찬 감격, 은혜의 힘을 가질 때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보다 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바울은 이처럼 자신을 자격이 없다고 보는데 하나님은 자격 있다고 하시고, 그는 자신을 감히 사도의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시며, 자신은 죄가 많아서 안 된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문제 삼지 않으신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파격적인 대우, 즉 연약함과 잘못을 불문에 붙이시고 불쌍히 여겨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먼저 자기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카피라이터로서 뒤늦은 나이에 예수를 만난 후 ‘막 쩌낸 찐빵’이라든지 ‘예수 안 믿으면 손해보는 77가지 이유’라는 책으로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만재라는 분이 거듭나고 나서 쓴 글이 있습니다. 그의 책을 보면 그는 성경말씀이 하나도 믿어지지 않답니다. 자기의 상식이나 철학으로 예수 믿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내와 결혼할 때 교회에 나가겠다는 조건으로 결혼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끌려서 교회에 다녔지만 그는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마치 순교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출석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참 뻥도 심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물위를 걷는 기적에 대해서 들으면서 "목사 양반이 멀쩡한 것 같은데 참 거짓말도 잘하네"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를 향해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씀이 가슴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렇구나 정말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 먹이는 것이야 쉬운 일이 아니겠느냐? 정말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그 순간 성령님이 그의 마음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그의 구원자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자기 인생의 구원자로 만난 것입니다. 그 때 그의 마음속에서부터 한 찬송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50여 년이 다 되도록 자신이 한 것은 세상에 속해서 세상 방법대로 세상에 취해서 살아온 것뿐인데 자기가 어디가 예쁜 구석이 있어서 이렇게 은혜를 주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 때는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던 자기가 이제는 자신의 인생 송두리째로 다 하나님께 드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자기모습이 너무나 너무나 신기할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목사로서 가장 큰 기쁨이 있다면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은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고 싶어서 애를 쓰는데도 결국 믿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에 비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은 자신이 일군으로 부름 받은 자로서 자신은 하나님이 맡긴 비밀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3-4절입니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도대체 비밀이 무엇입니까?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두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밀을 누구에게 얼마나 공개하느냐에 따라 상호간의 친밀도를 짐작할 수 있기도 하지요. 여러분은 자신의 비밀을 누구에게 이야기 합니까? 아무한테나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지는 않겠지요? 적어도 여러분이 비밀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특정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 사람을 믿기 때문이죠. 반대로,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자신의 소중한 비밀을 이야기 할 때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듭니까? 가슴이 뿌듯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나를 신뢰하고 있구나’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본문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비밀을 맡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비밀, 알게 되었을 때도 가슴이 뿌듯해지는데, 하물며 이 땅을 말씀 한마디로 지으신 하나님의 비밀을, 그저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 비밀을 우리에게 맡기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신분입니까?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이 비밀이 어떤 영어성경에 보면 "Open secret" 이라고 나왔습니다. 나타난 비밀, 공공연한 비밀, 이제는 당연히 나타나야 되고 자랑하고 싶은 그런 비밀이 뭐냐하면, 예수님이 내 구주가 되신 것, 내가 구원을 받은 것,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이것이 놀라운 비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점차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할렐루야! 연애를 안 해본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연애를 하게 되면 12시간을 같이 있다가도 헤어져서 귀가한 후에 또 전화합니다. 아이들에게 연인이 생기면 전화요금이 많이 나옵니다. 서로에 대해 알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여러분의 배우자를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취미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 않습니까?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새로운 것을 알게 되니까요. 그런데 10년 정도 함께 살면 어떻게 됩니까? 머리를 자르든지, 볶고 오든지 관심도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비밀을 깊이를 알면 신앙생활은 날마다 새로운 것입니다. 날마다 예배드려도 새롭습니다. 매일 기도해도 기도하는 시간은 지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날마다 깊이 알아갈수록 내 속에서 하나님의 비밀이 드러나게 되는 법입니다.
1. 그러면 이 비밀을 우리는 어떻게 드러내야 합니까? 8절에 보시면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 전도입니다. 다음 주는 교회가 무결석 주일로 섬깁니다.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베스트 셀러 작가, 존 맥스웰 목사님의 글에 나오는 한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존 맥스웰 목사님이 미국 남부를 여행하던 중, 비 오는 궂은 날씨임에도 친절하게 맞아주는 한 주유소를 들르게 되었습니다. 무척 인상적이었던 목사님은 ?도대체 이 주유소는 어떻게 이렇게 친절할까??하고 궁금했습니다. 그러다 주유소 입구에 붙어있던 한 글귀를 발견하고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고객들이 우리 주유소를 다시 찾지 않는 이유- 1%는 사망, 3%는 이사, 5%는 다른 주유소와의 친분 관계, 9%는 가격경쟁력, 14%는 상품에 대한 불만족, 그러나 68%는 몇몇 종업원들의 손님들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 때문. 다시 말해 주유소를 한번 방문한 후 다시 찾지 않는 이유68%는 몇몇 종업원의 불친절하고 무성의한 태도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고 있던 주유소 주인은 직원들의 친절훈련에 무척 신경 써 왔기 때문에 고객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고객이면서 우리 전도 대상인 세상 사람들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들이 한번 교회를 왔다가 다시 찾지 않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다수는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의 무성의하고 불성실한 태도와 행동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도자의 자세입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정말 겸손한 고백이 아닙니까? 왜 우리가 이 바울에게 흠뻑 빠지는 줄 아십니까?
그의 겸손 때문입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이후 그의 삶의 변화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요즘 매력 있는 사람들을 “얼짱”, “몸짱”이라고 합니다. 정말 매력적인 사람은 요즘 흔히 말하는 “얼짱”, “몸짱”이 아니고 “맘짱”입니다. 용모만 아름다운 사람은 사람들의 시선을 끕니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겸손한 사람은 사람들의 마음을 끕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두고두고 사로잡아 둡니다. 그래서 진정한 매력은 겸손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로 세상을 섬기니까, 이웃을 섬기니까 많은 사람들이 주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서울 용산의 삼각지 뒷골목엔 '옛집'이라는 간판이 걸린 허름한 국수집이 있습니다. 주인 할머니는 25년을 한결같이 연탄불로 뭉근하게 멸치국물을 우려내 그 멸치국물에 국수를 말아냅니다. 10년이 넘게 국수 값은 2,000원에 묶어놓고도 면은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더 줍니다. 한 번은 노숙자로 전락한 한 사내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내온 국수를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할머니는 금새 그릇을 빼앗아서는 다시 국물과 국수를 담뿍 담아서 내놓습니다. 사내는 쉴새 없이 먹었습니다. 그릇을 비우자마자 사내는 정신없이 도망을 칩니다. 할머니는 도망치는 사내를 향해 소리를 칩니다. “천천히 가 넘어져 다쳐!“ 이 할머니는 비록 노숙자이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게 보입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존귀히 대합니다. 바로 이것이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에게 매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하나님의 마음마저도 끕니다. 진정한 겸손은 정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높이고 찬양하고 자랑합니다. 또한 지나치게 겸양하지도 않고 비굴하지도 않으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켜갑니다. 그리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그가 누구든지 다 존중할 줄 압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진정한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인 우리는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매력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또 하나는 10절에 보세요.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신 이유가 영의 세계, 여기 나오는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을 이는 악한 영, 즉 마귀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마귀는 내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어떻게 하면 넘어뜨릴 수 있는지 훤히 압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유혹합니다. 이 유혹 앞에 우리는 쓰러질 인생이 아닙니다. 지금 보세요. 사탄이 그저 제철을 만난 듯 미친 듯이 날뛰고 있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우상들이 판을 치고 있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는 영적 어두움이 우리를 덮으려하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세력 앞에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선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요즘 하루에 42명이 하루에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세계 1위랍니다. 지금도 34분에 1명 꼴로 어디에선가 죽음을 택하고 있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우리 예수 믿는 자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특히, 자살률은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였으며 40대와 50대는 2번째로 높아 전 연령층대로 확대되는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참 답답하지 않습니까? 이런 영적으로 어두워진 이 시대 앞에 예수만이 우리의 희망임을 선포해야 합니다.
여기 12절을 보세요.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세상을 살며 환란을 당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가정적으로 얼마든지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생을 살다보면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하게 됩니다. 파산을 당할 때도 있고, 사업이 실패할 때도 있고, 행복한 삶을 위해 결혼을 했지만 결국 갈라서야 하는 아픔도 있고, 사랑하는 이가 먼저 세상을 떠날 때도 있고, 아침에 멀쩡했던 아이가 불행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한치 앞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비극을 당하여 몸부림칠 때 하나님께서 무관심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을 바꾸어 주시기는커녕 오히려 어두운 절망의 골짜기로 빠져 들어가도록 내버려두시는 것같이 보일 때가 더 많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생을 가랑잎처럼 흔들어 놓는 인생풍랑 가운데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한 분의 인격자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비록 우리의 허물도 연약함도 있었지만, 그것마져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의 일군으로서 ‘복음전파’하는 일에 생명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에 내 삶을 내어드릴 때, 성령께서 도우시고 내 성품을 날마다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성숙한 자녀로 삼아 새 시대에 하나님의 일을 아름답게 감당하게 하실 일군으로 쓰실 것입니다. 이 일에 내가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고 찬양하십시오. 우리가 하는 일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함께 하심으로 승리를 경험케 하는 은혜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