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감사하십시다.(살전5:18) 2010. 11.14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0-11-15 |
조회: 1569
이제는 감사하십시다. 살전5:18. 2010. 11/14
다음 주가 되면 추수 감사주일로 지키게 됩니다. 교회에서 지키는 절기가 여럿 있지만, 유독 감사절만 2번 있습니다. 상반기에 맥추감사주일, 그리고 하반기에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감사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 반면 사람들이 감사를 쉬이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잊어버리는 것은 영혼에 병이 든 증거입니다. 영혼에 병이 들면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막혀 버립니다. 결국 모든 게 막혀버립니다. 감사를 잊어버리는 것은 비유하자면 ‘신앙의 감기’입니다. 감기가 사소한 병이지만 방치하면 만병의 근원이 되는 것처럼 감사를 잊어버리는 것도 영적으로 좋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감기도 조심해야 되겠지만, 영혼의 감기도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이런 연유로 하나님께서 1년에 2번씩 영혼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라고 감사절을 주시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감사절은 신앙의 건강 정기검진일인 셈입니다. 감사를 잘하면 영적으로 상당히 건강하고 성숙한 신자가 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감사를 잘 모르는 사람에 비해 감사를 잘 아는 사람이 그만큼 건강하고 성숙합니다. 영적인 면뿐만 아니라 육적인 면에서도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건강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잘하려면 기도를 연습하고 배워야 합니다. 은혜 받았다고 기도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좀더 깊이 알려고 한다면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도 배우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믿음 좋은 주변 형제들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눈여겨보면서 배우고 연습해 보십시오. 그러면 드디어 나에게도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며 나아가 습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배워서 습득한 사람은 훨씬 더 감사가 풍성하고, 깊이 있는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좋은 일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지 못한 일에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공할 때야 어느 정도 감사할 수 있지만, 실패할 때 진정한 감사를 드리기란 웬만큼 배우며 연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힘듭니다. 이익을 많이 남겼을 때는 저절로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대한 손해를 입었는데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평소에 감사하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굉장한 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다른 공부보다 먼저 감사할 줄 아는 법을 배우십시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감사의 예술을 터득할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술은 그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피눈물 나는 수고와 연습을 필요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의 예술을 터득하려면 남보다 더 많이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피 눈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감사가 나에게 체질화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감사를 통해 엄청난 은혜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 받아야 자동적으로 감사가 넘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이 본문은 아마 신앙생활을 하는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귀가 따갑도록 듣고 또 이 말씀을 보셨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한 구절이라 단순히 지나칠 수도 있지만, 이 말씀을 기록한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편을 알면 여기 나오는 감사는 단순한 감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게 되면,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난의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에는 환난이나 고난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자주 등장합니다. 1:6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 많은 환난 속에 있었다. 2:2에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2:14에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3:7에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처한 고난의 환경 속에서도 이 역경의 환경 가운데서도 감사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내 사정, 내 형편이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처지에서 감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지금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많은 어려움과 역경가운데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격려하기 위해서 붓을 들어 이 편지를 썼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이 본문 18절은 우리들에게 중요한 세 가지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감사해야 하는가하는 감사의 이유와 우리가 언제 감사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는가 하는 감사의 방법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감사의 이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감사해야 할 삶의 이유가 있습니다. 감사의 삶!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기 감사가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살아갈 때 건강한 신앙인의 삶의 내 뜻과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의 자녀로 삼으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 감사의 삶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땀이 핏방울처럼 쏟아지는 그 고통의 기도 속에서 마지막까지 씨름하던 기도의 내용이 바로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여 할만하시어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한밤 동안 자신의 의지를 꺽기 위해 이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결국 주님의 뜻 앞에 자신을 내어 드릴 때 십자가는 더 이상 두려움과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그 길을 당당하게 감사함으로 걸어가신 것입니다. 주님도 그러하셨지만, 여러분도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보람을 느끼며 살 때가 언제입니까? 바로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드러날 때가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함께하는 본문에 ‘감사하라’는 단어가 명령어로 쓰였다는 사실에 주의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가 명령하시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명령하실 때에 하나님은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은혜를 뒤따라 보내기 때문에 변명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만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현대인이 당면한 문제는 감사의 문제입니다. 모든 문제는 감사를 잃은 데서 출발합니다. 감사를 회복하면 문제도 해결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감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430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하던 자신들이었기 때문에, 희망도 모든 미래도 포기했던 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간섭으로 애굽에 10가지 재앙으로 뿌려지고, 자신들은 꿈에도 그리던 자유를 맛보게 됩니다. 그들은 지난 날 생각하지도 못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홍해가 갈라집니다. 광야에서 반석이 터집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쏟아집니다. 어찌 그 뿐이겠습니까? 그들의 가는 길에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훤히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으며,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으며,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보십시오. 그들은 입만 열면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죽을데가 없어서 광야까지 와서 죽게 되었는가” 걸핏하면 불평과 원망입니다. 이 불평하는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민 14:27,28에 보십시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의 소리를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 주겠다고 하셨습니까? ‘네가 말한대로 그대로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그들의 소원대로 광야에서 다 죽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감사하지 않는 인생의 최후의 모습입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만일 하나님이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그것은 질병이나 실패나 배신이나 죽음으로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믿어지지 않는 불신앙으로,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는 막힌 귀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불평불만과 원망만하고 추호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풍요로운 물질의 소유만이 축복은 아닙니다. 비록 한 조각의 빵을 앞에 놓고서라도 기쁨과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축복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더라도 더 소유하고픈 욕망과 언제 잃게 될 지 모를 불안과 공포 가운데 하루하루를 지샌다면 어찌 그것을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이웃이 구제의 대상이 될 정도로 궁핍하게 살더라도 그의 생활에 감사와 기쁨이 넘친다면 축복은 바로 이런 자의 소유가 아니겠습니까?
둘째로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감사의 삶을 살도록 명령하시는데,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다시 한번 본문을 보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여기 ‘범사’라는 단어는 우리가 모든 일 가운데에서, 모든 상황 가운데에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처해진 환경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성도의 고백처럼 "나는 장미를 들고는 수백 번 감사를 했지만 가시를 가지고 감사한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라는 말은 솔직한 고백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감사는 온전한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장미를 놓고 감사해야 되지만, 가시를 놓고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가시의 가치를 가르쳐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가시를 가지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물이 무지개로 바뀌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길 원한다면 장미와 가시를 동시에 놓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평생 장미만 들고 인생을 화려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도 예외 없이 가시 때문에 찔리고 고통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 쓴 “하나님이 생각하시다가”라는 수필집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 믿음을 가진 이 부부에게 결혼 후 16년이나 아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아기를 주시도록 기도해 드디어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16년이나 기도하며 기다린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기가 태어났을 때 아기의 아버지는 의사로부터 너무나 충격적인 통보를 받았습니다. “죄송하지만 이 아기는 저능아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앞이 캄캄한 절망 속에서 아기를 받아 안고 흐느껴 울면서 병실의 자기 아내에게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기를 아내에게 안겨주면서 의사에게 들은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충격 속에서 아기를 꼭 끌어안고 몸부림치던 그 엄마가 한참 후에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여보, 괜찮아요. 하나님이 생각하시다가… 이 아기를 어디에 맡길까를 하나님이 생각하시다가, 16년씩이나 아기를 기다려온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죠“ 오히려 16년 동안 기다림 끝에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자신들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감사하는 이 부부를 보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상황을 보면 미쳤다고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에게도 하나님이 생각하시다가 이런 남편도 맡기시고, 이런 자녀들도 맡기시고, 이런 가정도 맡기신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여건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보시고 하나님의 승리를 보십시오.
여러분! 우리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 같은 것을 만세전에 아시고 끝까지 간섭을 하시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그 대신 나를 끌어 안으셨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무엇이 아쉬워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우리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엄청난 구원계획 앞에서 나를 보면 나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 끝 날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일을 멈추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도 예외 없이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감사할 것이 없습니까? 이 시간 감사하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감사가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못하는 것일 뿐 다 감사할 제목이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감사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어도 우리가 감사의 방법을 모르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감사의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한번 본문을 보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여기 우리의 감사의 방법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롬8:28)으로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런 고통과 괴로움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조금씩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만 있으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환경을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환경이 좋을 때는 모든 것이 희망적으로 보이지만 상황이 달라질 때는 그 상황 앞에 우리의 삶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상황 안에서만 인생을 바라볼 때 우리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 “왜 이것 밖에 안되지?” 하는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도 있습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을 바라볼 때는 다릅니다. 한 때 내 것으로 차 있었고, 내 노력, 내 의지로 가득차 있어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없었던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내 운명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주님 앞에 거꾸러집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자신이 쏟았던 모든 것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그 순간부터 쓰레기처럼 여겨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아름다운 보석들이 각각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낼 때 갑자기 영롱하고 찬란한 다이아몬드가 들어오자, 이제까지 광채를 빛내던 모든 보석이 빛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변함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이 참된 인생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그는 삶의 새로운 목표를 발견합니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기쁨. 뜨거운 감격, 가슴 깊은 곳에 저미도록 스며드는 그 하나님의 사랑 앞에 감사의 고백이 터져 나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 안에서만 알 수 있는 넘치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자리에서도 감사합니다.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감사합니다./?감옥에서 저미어오는 매맞음의 통증을 끌어안으면서도 감사합니다./?살 소망이 끊어진 자리에서도, 지금의 고난은 장차 누릴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며 감사합니다. /?그는 신약 13서신을 기록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성도들에게 감사합니다./범사에 감사하는 이 전천후의 감사는 바울의 삶을 능력 있는 삶으로! 승리하는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일년 내내 닥치는 대로 살다가 가을만 되면 감사절이라고 해서 의무감으로 감사헌금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결실의 계절 가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기회가 되어지길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받아주시고, 내 삶을 새롭게 하시고 내게 영원한 소감을 주셨다면, 이제 나룰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어떠하던지 우리는 충분히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 시간 우리 이렇게 한번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18세기 영국의 시인 조지 허버트가 이런 아름다운 기도시를 남겼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이제 한 가지만 더 주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을!" 오늘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부디 이 감사의 계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함으로 감사를 회복하시고 행복한 인생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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