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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나의 택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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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5-02-02

본문

"나의 택한 그릇" 행전 9:13-15 . 2025. 1/31. 주일 설교

우리가 일제의 핍박 속에 있을 때 우리 민족에게 용기를 주었던 인도의 시성 타고르라는 시인을 잘 알 것입니다그는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분입니다그가 우리나라를 무엇이라 한지 아십니까그는 동방의 등불이라는 책을 써서 한국이 동방의 빛이 되어 세계에 영감을 줄 것이라는 희망을 세상에 알렸습니다그는 당시 탁월한 글을 발표했던 이탈리아의 철학자 크로체에 매료된 적이 있습니다어느 날 시인 타고르가 강에서 배를 띄우고 크로체가 쓴 아름다움에 관해라는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그 책이 말하는 한 철학자의 눈에 보여진 아름다운 세계에 기뻐하며 감격하고 있었습니다.

 

촛불을 켜고 책을 읽고 있었는데 워낙 열중해서 읽다보니 촛불의 심지가 다 타 들어가 꺼진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문득 주위가 캄캄해지고 책을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칠흙 같은 어둠입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이제까지 촛불에 가려졌던 세계가 그의 눈앞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주변이 눈에 익으면서 흐르는 물이 보이고달빛에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습들이 하나하나 다가옵니다타고르는 고백합니다. 나는 그때까지 촛불에 의지해서 크로체의 아름다움을 읽는 것이 전부였습니다그러나 촛불이 꺼지자 하나님이 빚으신 저 아름다움이 나에게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창공에 떠있는 별과 달의 아름다움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물결에 굽이치는 달빛온 세상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나는 촛불이 꺼진 다음에야 알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마치 아름다운 보석들이 각각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낼 때 갑자기 영롱하고 찬란한 다이아몬드가 들어오자이제까지 광채를 빛내던 모든 보석이 빛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내가 보는 시선은 현실 만이 아닙니다은혜를 받게 되면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그러므로 무엇이 참된 인생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그리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그는 삶의 새로운 목표를 발견합니다도무지 견딜 수 없는 기쁨뜨거운 감격가슴 깊은 곳에 저미도록 스며드는 그 하나님의 사랑 앞에 감사의 고백이 터져 나옵니다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 안에서만 알 수 있는 넘치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은 본문은 너무도 유명한 사도 바울의 회심 사건을 살펴 보았습니다그토록 기독교를 핍박하던 사도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이것이 그의 삶에 너무나도 중요했기 때문에 아마도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예배 시간마다 자신의 간증을 했던 것 같습니다그래서 이 사도행전에만 해도 똑같은 사도 바울의 회심 사건이 세 번이나 나타나 있는데오늘 본문과 22장과 26장에 누가가 기록하고 있습니다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이 놀라운 변화를 한 신학자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울을 바울로 바꾸셨다그리고 바울은 세계 역사를 바꾸었다!' 여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그런데 이 사도 바울을 누가 바꾸었습니까그리스도께서 바꾸셨습니다그는 원래 이 역사를 바꿀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런데 하나님이 그를 바꾸셨습니다그렇다면 오늘 바울을 부르시고 나의 택한 그릇이라고 말씀하신 분이 오늘 나를 엄청난 십자가의 희생의 대가를 치루시고 자녀 삼으셨습니다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얘기하십니다내가 지금도 너를 부르고 있노라질병을 통해자식의 아픔을 통해사고를 통해친척간의 괴로움을 통해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그분은 결코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실 겁니다끝까지 여러분을 온전한 자리에 앉히기 위해 노력하실 것입니다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입니까?


인생의 진정한 주인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사울로 말하면 자기 자신을 믿고 살만한 사람이었습니다여러분이 사울로 인하여 당시 부흥하는 예루살렘 교회가 엄청난 환란 속에 빠지지 않았습니까예루살렘 교회를 잔멸한 사울의 악명은 예루살렘에서 2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다메섹에까지 널리 퍼져 있었고그의 다메섹 방문 목적까지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자신이 사울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주님께 소상히 아뢰었습니다. 13-14절에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 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무슨 말입니까사울을 인간적으로 사울에게 안수하는 것이 탐탁치 않았습니다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사실성경은 영혼의 추적자에 관한 기록입니다왜냐하면 성경이 하나님을 영혼의 추적자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한번도 당신을 포기한 적이 없으셨습니다탕자처럼 멀리 떠나 그분을 잊고 방황할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을 기다리셨습니다고멜과 같이 세상에 짝하여 방탕할 때도 그분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셨습니다사마리아 여인처럼 쾌락에 묻혀 살 때도 그분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아담아아담아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죄를 짓고 두려워 숨어있을 때에 하나님이 아담을 찾아 나서셨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그리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아담아아담아네가 어디 있느냐!" 그가 숨어있는 장소를 몰라서 부르셨겠습니까아닙니다이것은 아담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었습니다또한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죽이고 전혀 회개할 마음이 없을 그 때에도 하나님은 가인을 찾아 나섰습니다그리고 그를 역시 부르셨습니다"가인아가인아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무슨 얘기입니까죄지은 아담을 부르셨던 하나님살인한 가인을 부르셨던 하나님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살기 등등해서 찾아가는 사울을 부르셨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을 부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목놓아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을 녹취한 책입니다우리를 포기할 수 없어서우리를 끝까지 그의 품에 안으시려는 하나님의 추적에 대한 기록입니다수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며 스데반을 죽이고도 모자라 살기 등등하던 사울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메섹으로 찾아가 부르셨습니다오늘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찾으십니다. 오늘 여러분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여러분은 과연 듣고 계십니까오늘 왜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습니까왜 그토록 신앙생활을 오래하고도 우리 마음에 변화가 없습니까그 이유는 성경을 수없이 읽으면서도 이 애타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우리가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이 음성을 듣는 자는 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오늘 이 음성을 들으십시오.

 

사울을 찾으셨던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을 찾으십니다여러분의 있는 자리가 어디입니까오늘 이 말씀을 듣는 가운데 내 머리 속의 하나님이 아닌성경 속에 기록된 제3의 하나님이 아닌나의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 모두가 듣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지금 핍가자인 사울에게 엄청난 메시지가 전해 집니다.

 

택한 나의 그릇이라 15

지금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15절에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15). 여기 "나의 택한 그릇"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특별한 목적으로 선택하셨다는 뜻입니다우리가 집에서 밥을 먹을 때 그릇이 없으면 참 불편하지 않습니까그릇은 음식을 담는 중요한 도구입니다마찬가지로 성경에서 "그릇"은 하나님의 뜻을 담고전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바울은 원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했지만하나님은 그런 그를 변화시키셔서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기로 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복음의 사명을 감당할 "택한 그릇"었던 것입니다.

 

사울이 다메섹의 직가에서 자신이 주님에 의해 선택된 '주님의 그릇'임을 깨달은 이후그의 삶은 일평생 주님의 그릇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주님의 그릇이란 문자 그대로 주님을 담는 그릇입니다바울은 고후4:7절에 자신을 "[그릇속에하나님의 영광스런 지식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바울은 자신을 아무 조건없이 택한 그릇으로 받아주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그는 자신을 질그릇에 비유를 했습니다질그릇은 깨지기 쉽고 보잘것없지만그 안에 담긴 보배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자신의 삶의 가치를 깨닫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화가 드러나게 하기위해서 날마다 자신을 깨는 작업을 하였습니다그래서 고전15:31절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벗어버려야 하고이생의 자랑을 죽여야 합니다영원한 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방해하는 육체적인 것들을 다 십자가에 못 박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영원한 생명을 담고 있는 존귀한 존재가 되었음에도 자기 스스로 그 존귀함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존귀한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마치 몇백만 원짜리 명품백을 가지고 다니면서도 그것이 시장바구니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 명품백의 가치는 그냥 시장바구니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안고 살기에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되었음에도여전히 우리 자신을 비천하고 볼품없는 존재처럼 생각하며 산다면 그것은 비극중에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본문은 우리에게 놀라운 메시지를 줍니다.

 

다시 보게 하시니 – 사명자로 17-19

실명자로 고통당하던 그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집니다여기서 '비늘'은 비늘이 벗겨진다는 것은 잘못된 확신과 교만이 내려가는 순간입니다그동안 보지 못했던 예수님이 보이기 시작하고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게 됩니다사울은 이제 예수님을 핍박하는 사람이 아니라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이 됩니다그의 이름도 바울로 바뀌죠.

여러분우리도 신앙 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비늘 같은 것들이 우리의 눈을 가릴 때가 있습니다내 경험이 맞다고 고집할 때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할 때내 판단이 기준이 될 때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비늘을 벗겨주시는 순간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그리고 다시 보게 됩니다. 17-18절에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오늘 함께 읽은 사도행전 본문에서의 키워드가 있다면 다시 본다는 말입니다. 12절에 보면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17절에도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18절에도 다시 보게 된지라고 했습니다다시 보게의 의미는 단순히 육체의 눈이 열리는 것을 넘어영적으로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아나니아는 사울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알고 있었지만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울을 찾아갑니다그리고 그에게 손을 얹고 이렇게 말합니다. 12절에 형제 사울아주 예수께서 너에게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려고 나를 보내셨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됩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앞이 깜깜할 때가 있습니다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왜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지왜 내 길이 막히는지 모르겠을 때가 있습니다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의 영적인 눈을 다시 뜨게 하시면우리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됩니다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뜻을 보게 되고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게 되는 것그것이 진정한 "다시 보는" 역사입니다사울은 이전까지 자신의 시각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했습니다하지만 주님을 만나면서 그의 눈은 열렸고비로소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 다시보는 그의 삶은 새로운 비전과 사명을 받는 과정입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시 보는 것은 단순한 시력 회복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울이 눈을 다시 떴을 때그는 이전의 사울이 아니었습니다그는 더 이상 예수님을 핍박하는 사람이 아니라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사울의 변화는 단순히 한 번의 회심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그는 이후에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그가 다시 본 것은 단순한 육적인 눈이 아니라하나님의 계획과 사명을 보는 영적인 눈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우리가 다시 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예전에는 내 뜻대로만 살았지만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보며 살아야 합니다예전에는 문제와 어려움만 보였지만이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아야 합니다예전에는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았지만이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다시 본다"는 것은 단순히 문제 해결이 아니라하나님의 계획과 사명을 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그릇입니다질그릇 같은 내 인생에게 오셔서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볼 기회를 주십니다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으로 어두운 상태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혹시 내 삶이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분이 계십니까하나님은 우리가 다시 보기를 원하십니다그냥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새로운 영적인 눈을 가지고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었듯이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보고새로운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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