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청년이 가질 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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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5-05-18본문
무엇이 청년이 가질 힘인가 2025. 5/18 삼상17:41-49.
오늘은 교회가 스승을 위로하고 또 청년들이 성년-어른이 된 것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세대를 이끌어가는 청년들을 온 성도들이 기도해주고 격려해주는 뜻깊은 주일입니다. 무엇보다 한 교회의 선생님으로 30년이상 근속하신 4분의 교사와 선생님을 볼 때 감사할 따름입니다. 점점 학생들이 주는 인구감소 시대에도 묵묵히 다음세대를 섬기는 교사분들을 생각하면 고개가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주님의 크신 위로가 선생님들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요즘 여러분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가장 무겁게 자리잡고 있습니까? 아마 이런 말들일 겁니다. “대학 졸업했는데도 일자리 못 구했어요.” “알바해서 월세 내면 남는 게 없어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현실은 벽 같아요.” “미래가 너무 불투명해요.”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말 그대로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청년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하다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입시가 끝나도 또 다른 경쟁이 기다리고, 스펙을 쌓아도 불확실한 사회, 게다가 경제는 불황이고, 물가는 오르고, 뉴스는 언제나 불안하기만 합니다. 이 모든 상황이 마치 거대한 골리앗처럼 우리 앞에 서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성경에도 그런 위기의 시대를 살아간 청년이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참 좋아하는 인물 중에 한 사람, 다윗입니다. 그도 그의 생애를 보면 실패로 깊은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었고, 다시 일어설 것 같지 않은 젊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의 청소년기 삶은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가족들도 다윗에게 눈길 한번 안 줄 정도로 미래가 없는 요즘 말하는 흙수저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오. 그런 그가 훗날 다윗 왕조를 일으키고 장차 오실 메시야의 혈통을 이루는 역사에 별과 같이 빛나는 삶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그들의 국기에 다윗의 별을 새기고 있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여깁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러한 청년 다윗의 특성은 골리앗과 싸운 싸움에서 가장 잘 나타납니다. 본문에 보면 서로 진을 친 장소를 엘라 골짜기라고 합니다. 여기 등장하는 '엘라 골짜기'라는 말의 뜻은 '상수리나무의 골짜기'란 의미로 당시 그 지역 내에는 나무가 무성한 곳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겉모습뿐이지, 그 속에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죽음의 냄새가 짙게 깔린 곳입니다. 이 골짜기에는 죽느냐 사느냐하는 생존이 달려 있는 현장입니다.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미래가 송두리 째 무너지는 위기의 현장입니다. 이 골짜기에는 팽팽한 힘의 대결이 있었고, 40여 일간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했었습니다. 거기에는 증오의 힘이 있었습니다. 두려움의 힘이 있었습니다. 불안과 죽음의 힘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블레셋과의 전쟁이 치열했던지 이스라엘 왕인 사울 왕이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 할 정도였지만,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이기지 못하고 도리어 계속 밀리기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군대에 전쟁에 능한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골리앗입니다. 그는 신장은 283cm입니다. 머리에는 놋투구, 가슴에는 작은 철편들을 물고기 비늘모양으로 붙여 만든 갑옷이 있었습니다. 다리와 종아리는 놋쇠로 만들어진 갑옷이 싸고 있었고, 어깨에는 언제고 던져 찍을 수 있는 단창 통이 얹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입고 있는 갑옷 무게만 57Kg이었고, 창 무게가 7Kg에 달했습니다. 골리앗은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춘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모습의 골리앗을 만나면 어떤 태도를 취하겠습니까?
Ⅰ. 다윗은 상황보다 하나님을 바라본 사람입니다 (v.45)
요즘 우리 청년들이 맞이하는 시대는 마치 골리앗과 마주한 이스라엘 진영처럼 움츠러들고 전의를 상실한 모습과도 같습니다. 블레셋 진영에서 나오는 거대한 골리앗 앞에 엘리압도, 사울도, 다른 장수들도 다 숨어버린 상황. 그 누구도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린 다윗이 등장합니다. 그는 갑자기 용감해진 게 아니라, 평소에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미 영적 감각과 믿음의 담력을 키워온 청년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의 안부를 알아보고 형들에게 먹을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얼떨결에 전쟁터에 찾아왔다가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독하며 소리지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광경을 본 다윗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그 소리를 듣고 견딜 수가 없어서 자신이 그 골리앗과 싸우러가겠다고 자청합니다. 형들도 말리고, 사울 왕도 말렸습니다. 싸움에 용맹한 장수들도 겁을 내는 판에 어린 다윗이 싸우러 가겠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끝까지 싸우러 가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자신이 쓰고 있던 놋투구를 다윗의 머리에 씌워주고, 자신이 입고 있던 갑옷을 다윗에게 입혀주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칼을 다윗에게 줍니다. 골리앗과 싸우러 가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몇 걸음 걸어보더니 너무나도 불편하다고 생각하고, 갑옷을 벗어버리고 칼마저도 포기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 입도 다니던 옷을 입고, 자신이 양을 칠 때 가지고 다니던 막대기를 가지고, 맹수를 물리칠 때 사용했던 물매에 돌맹이 다섯 개만 주워가지고 골리앗과 싸우러 갑니다.
저는 이 모습에서 오늘 우리 청년들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청년의 위기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위기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청년들은 사울의 투구와 갑옷 그리고 사울의 칼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스펙에 너무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청년들의 삶의 현장에 투구가 없고 갑옷이 없다는 것 때문에, 사울이 가졌던 칼이 없다는 것 때문에 위기에 빠진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을 보십시다. 다윗은 투구와 갑옷과 칼이 없어도 골리앗과 싸우러 가는데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투구, 왕의 갑옷, 왕의 칼을 가진 사울이나, 어떤 군사훈련을 잘 받았던 장수들조차도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왕의 투구가 없어도, 왕이 입던 갑옷을 입지 않았어도, 사울이 허리에 찬 칼을 손에 들지 않았어도 골리앗과 싸우러 가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사울이 씌워준 투구, 사울이 입혀준 갑옷을 벗어버렸고, 사울이 쥐어준 칼을 포기했습니다.
Ⅱ. 기회를 포기할 것입니까? 주어진 기회를 붙잡을 것입니까?
사실 우리 인생을 보면 모든 사람에게 기회는 찾아옵니다. 주어진 기회를 잡지 못하는 사람은 있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블레셋의 골리앗을 앞에 두고 사울 왕은 백성들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25절을 보겠습니다. “더러는 가로되 너희가 이 올라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비의 집은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하게 하시리라” 이제 이스라엘에 사는 그 누구라도 골리앗만 꺾을 수 있다면 많은 재물을 얻을 수 있고, 왕의 사위가 될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는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평생에 이런 기회가 어디있습니까? 왕의 사위가 되고 한생 가난을 벗어난 철호의 찬스입니다. 인생이 새롭게 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24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여기 이들의 반응은 이 찬스를 자기 것으로 삼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했습니다. 여기 ‘두려워했다’는 말은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는 말입니다. 이는 자신의 현실 앞에 무너지는 인간의 공포심을 말합니다. 아무도 도전할 용기를 내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더더구나 마음 아픈 것은 골리앗을 물리치겠다는 이 다윗의 결단에 찬물을 끼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8절을 보겠습니다. “장형 엘리압이 다윗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큰형 엘리압은 다윗을 가리켜 교만하고 마음이 완악하다고 하며 심하게 비판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다윗이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서 시도하는 사람의 기를 여지없이 꺾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엘리압처럼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아예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비판도 하지 않습니다. 아예 서로 교류가 없는 사람은 브레이크를 걸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금 그 사람에 대해서 안다든지, 약간 교류가 있는 사람이 오히려 낙심케 합니다. 그러나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대적은 골리앗이지 엘리압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회는 도전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도전하는 사람만이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 주위에 보면 안 되는 이유만을 주야로 묵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뜻 보면 매우 신중한 사람처럼 보입니다만, 사실 그러한 사람은 비관주의자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평생동안 ‘안 되는 이유’만을 반복해서 말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실패를 두려워하는 자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중학교때 유도를 했습니다. 제일먼저 배운 것이 낙법입니다. 땅바닥에 쓰러지는 연습부터 합니다. 도전해서 실패 볼 수 있지만, 그 실패를 통해서 얻게 되는 배움이 성공의 디딤돌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엘리압의 공격이 있을 때, 이기는 유일한 길은 참는 것입니다.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엘리압하고 싸우기를 원합니다. 엘리압하고 싸웠다면 이겨도 문제요, 저도 문제입니다. 만약 다윗이 엘리압을 이겼다면 도덕적인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형이 잘못했어도 형 때린 동생을 칭찬하는 문화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졌다면 골리앗과의 싸움에는 나가보지도 못하고 온 힘을 다 쏟아 부어 탈진 상태가 되었을 것이고 그 게임은 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잘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싸우는 가가 더 중요합니다.
Ⅲ. 세상과 도전하라
45절 말씀에 보면 청년 다윗이 거인 적장 골리앗에게 나아가며 물매 돌을 들고 나아가며 외친 말입니다. “다윗이 불레셋 사람에게 아르되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여호와 체바오트)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오노라” 여러분, 당시 이스라엘군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골리앗 앞에 나서지 못합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40일 동안 골리앗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두려움 속에서 전의를 상실한 그때 다윗이 나섭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길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다윗은 인간적인 무기로 싸우지 않겠다는 겁니다.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아오는 너와는 다르다. 나는 네가 멸시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다윗은 단순히 신념이나 용기로 싸운 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들고 나간 겁니다. 이 말은 단순히 "하나님 믿습니다!"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과 권세를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고백입니다. ‘이름’은 성경에서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뜻하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간다는 건,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하시고, 그분의 능력과 뜻 안에 내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골리앗은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 앞에는 불확실한 미래, 취업, 불안정한 사회, 때론 가정의 문제나 경제적 어려움, 감정의 상처가 골리앗처럼 버티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 찰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바로 마음입니다. 잠4:23절은 이렇게 말해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 말은 무슨 뜻이냐면, 우리가 눈이나 손, 재산이나 명예보다도 마음을 가장 먼저 지켜야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의 방향, 말, 행동, 태도 — 이 모든 것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4절에서는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고 합니다. 마음이 바르면 말도 바르고, 말이 바르면 행동도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마음이 상하면 말도 상하고, 결국 삶 전체가 흔들릴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잘 지켜야 해요. 상처, 미움, 두려움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말씀으로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마음을 지키면 인생이 지켜진다." 딤후1:7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무슨 말입니까? 이 위기의 시대에 여러분의 마음을 잘 붙드십시오. ‘두려워하는 마음’이라는 말은 겁쟁이처럼 움츠리는 마음, 용기 없이 물러나는 마음을 말해요.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마음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면 뭘 주셨을까요? 첫째, 능력입니다. 성령 안에서 주시는 영적 담대함,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이에요. 둘째, 사랑입니다.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품고 이해하며 이끌어가는 사랑입니다. 셋째, 절제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통제력, 곧 자기 관리 능력입니다.
오늘 청년 여러분, 오늘 다윗처럼,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다”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기가 없을지 몰라요. 인맥도 없고, 능력도 부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와 함께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다윗은 사람을 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우리도 문제를 보기 전에 하나님을 먼저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골리앗을 무서워하지 말고, 그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다윗이 붙든 ‘만군의 여호와’는 단순히 위로가 되는 말이 아닙니다. 만군의 여호와는 ‘온 우주의 군대,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다스리시는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전쟁의 주인이시고, 승리의 결정권자이신 하나님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앞길을 여시는 분은 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어떤 골리앗이 앞에 서 있든, 외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간다!"
오늘 여러분 손에 들려진 물맷돌은 세상의 모든 타락된 것을 무너뜨리며,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을 쓰러뜨리며 세상의 변화를 복음의 물줄기로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승리케 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도전하는 자와 함께 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청년 여러분! 현실에 안주해서 안 되는 것만을 앞세우지 말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골리앗에게 도전하십시오. 골리앗은 무너질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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