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우리 생애의 최고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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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작성일23-04-01본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20세기 최고의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그가 한 때 14살 연상의 여인 '루 살로메'를 뜨겁게 사랑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불같은 사랑을 시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 눈빛을 가려 주십시오 그래도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 주십시오 그래도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걷지 않고서도 당신에게 갈수 있고 입 없이도 당신에게 약속할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당신 손으로 꺾어 주십시오 그래도 내 가슴으로 당신을 잡을 수 있습니다/
내 심장을 도려내 주십시오 그래도 내 뇌는 당신을 향해 뛰놉니다/
당신이 내 뇌 속에 불을 놓으신다면 내 핏속으로 당신을 실어 나를 것입니다
릴케는 이 시의 제목을 ‘사랑의 포로’라고 붙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귀에 들리는 것도 온통 그대뿐입니다. 가슴 속에도, 머리 속에도, 심지어 피 속까지도 온통 그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철저하게 그대를 향한 사랑에 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포로가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던 릴케도 시간이 지나자 달라졌습니다. 점점 그 마음이 루 살로메로부터 멀어져갔습니다. 다른 여인과 결혼하게 됐습니다. 불같던 그 사랑도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그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할 때가 있습니다. 철저하게 그 사랑에 매여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포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오래도록 지속되기가 어렵습니다. 영원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여기 일생을 이 사랑을 마시고 호흡하며 산 사람이 나옵니다. ‘바울’입니다. 지금 그는 주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면 잡히게 될 것이고, 견디기 힘든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고, 죽을지도 모릅니다. 바울은 성령께서 알려주셔서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눈물로 그 앞길을 막아섭니다. 자신도 자기를 걱정하는 동료들의 만류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행 20:22). 자신이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과 그 길을 가는데 조금도 후회가 없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죽음마저도 자신의 가는 길을 막을 수 없다는 이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부활하셔서 자신을 붙드신 그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4). 여기 '강권'이란 말은 둘 사이에 꼭 끼여서 꼼짝할 수 없는 것으로, 헬라어로는 ‘힘 있게 꽉 잡힌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랑하는 주님께서 나를 아주 꽉 잡아 주셨습니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나를 붙드셨습니다. 이 사랑에 매어 한 생을 부활하신 예수님과 깊은 사랑에 매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처럼 자신도 단두대에 목이 잘리는 순교의 자리에서도 사랑에 매여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도 이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내 눈빛을 가려 주십시오 그래도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 주십시오 그래도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걷지 않고서도 당신에게 갈수 있고 입 없이도 당신에게 약속할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당신 손으로 꺾어 주십시오 그래도 내 가슴으로 당신을 잡을 수 있습니다/
내 심장을 도려내 주십시오 그래도 내 뇌는 당신을 향해 뛰놉니다/
당신이 내 뇌 속에 불을 놓으신다면 내 핏속으로 당신을 실어 나를 것입니다
릴케는 이 시의 제목을 ‘사랑의 포로’라고 붙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귀에 들리는 것도 온통 그대뿐입니다. 가슴 속에도, 머리 속에도, 심지어 피 속까지도 온통 그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철저하게 그대를 향한 사랑에 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포로가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던 릴케도 시간이 지나자 달라졌습니다. 점점 그 마음이 루 살로메로부터 멀어져갔습니다. 다른 여인과 결혼하게 됐습니다. 불같던 그 사랑도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그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할 때가 있습니다. 철저하게 그 사랑에 매여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포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오래도록 지속되기가 어렵습니다. 영원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여기 일생을 이 사랑을 마시고 호흡하며 산 사람이 나옵니다. ‘바울’입니다. 지금 그는 주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면 잡히게 될 것이고, 견디기 힘든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고, 죽을지도 모릅니다. 바울은 성령께서 알려주셔서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눈물로 그 앞길을 막아섭니다. 자신도 자기를 걱정하는 동료들의 만류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행 20:22). 자신이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과 그 길을 가는데 조금도 후회가 없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죽음마저도 자신의 가는 길을 막을 수 없다는 이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부활하셔서 자신을 붙드신 그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4). 여기 '강권'이란 말은 둘 사이에 꼭 끼여서 꼼짝할 수 없는 것으로, 헬라어로는 ‘힘 있게 꽉 잡힌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랑하는 주님께서 나를 아주 꽉 잡아 주셨습니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나를 붙드셨습니다. 이 사랑에 매어 한 생을 부활하신 예수님과 깊은 사랑에 매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처럼 자신도 단두대에 목이 잘리는 순교의 자리에서도 사랑에 매여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도 이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2023년 4월 서재에서.
여러분의 섬김이 안두익 목사.
여러분의 섬김이 안두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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