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신앙칼럼


더 넓고 풍성한 세상을 여는 지혜! - 수용력 (2017년 7월 신앙칼럼)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작성일17-07-07

본문

지난번에 우리 교회가 공동체별로 주일에 오후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나이가 든다는 생각은 했지만, 우리 공동체의 어르신들이 남한산성 산행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면서 새삼 나이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평생 늙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나이 앞에 걸음걸이가 힘겨워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나이가 들어갈 때 중요한 레슨은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주름살이 늘어나는 것, 기력이 떨어지는 것을 어색하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 조명이 꺼지는 것에 당황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사가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놀랄 이유가 없습니다. 삶의 여정이란 본래 그런 것입니다. 한 때 주연이었던 것으로 충분합니다. 조연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불가피하게 찾아오는 상실을 긍정해야 합니다. 삶의 결핍이나 축소에 대해서 거북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삶은 즐거워집니다. 그러나 막상 이것을 받아들이기란 매우 힘든 일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이 다가올 때, 내가 원했던 것과 다른 결과가 주어졌을 때 누구나 그것들을 부정하고 싶어집니다. 모두에게는 자신만이 고집하는 세계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나 사람이 다가오면 거부하거나 분노합니다살다 보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맞이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특히 고통은 언제나 낯설죠. 인간은 자신의 고정된 틀을 가지고 살게 마련입니다. 물론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집착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타인을 수용하지 못하는 자아 중심적 집착은 고립된 삶을 만듭니다. 외롭게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아가 강하다는 것입니다. '나와 너는 다르다'라는 배타적 경계선이 짙습니다. 경계선이 짙을수록 스스로가 독방에 갇히게 됩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 편견을 내려놓고 그대로 받아들일 때 성숙한 세상이 됩니다. 받아들이는 만큼 성숙해지고 성숙에 이를수록 자유가 찾아옵니다. 받아들인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하려는 폭을 적극적으로 넓혀 가야 합니다.  수용력은 이해력에서 옵니다. 이해의 폭이 삶의 크기이고 인격의 용량입니다. 이전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면 삶은 달라집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분노했던 것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자신의 좁은 도량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가 많습니다. 속 좁은 자신에 대한 뒤늦은 후회가 다가옵니다. 시야가 너무 얕으면 만사가 부대끼게 됩니다. 얕은 강은 쉽게 범람하게 됩니다. 문제의 크기보다 받아들이는 용량이 더 큰 관건입니다. 수용력이 작으면 속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품는 것만큼 넓어집니다. 밀치지 않고 끌어당기는 힘이 세상을 바꿉니다. 원수도 친구로 만드는 힘은 바로 수용력입니다. 불행도 끌어안으면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내가 전혀 원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긍정하고, 나와 다르지만 받아들이다 보면 다른 세상이 열립니다. 이제 우리에게 몰려오는 더위도 품고 나가는 여름의 지혜를 배웠으면 합니다.

 

2017. 7. 여러분의 섬김이 안두익 목사

댓글목록



신앙칼럼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76 관리자 2018-03-16
75 관리자 2018-02-06
74 관리자 2018-02-06
73 관리자 2018-02-06
72 관리자 2018-02-06
71 관리자 2017-11-24
70 관리자 2017-10-18
69 관리자 2017-08-22
68 관리자 2017-08-08
열람중 관리자 2017-07-07
66 관리자 2017-06-16
65 관리자 2017-06-16
64 관리자 2017-03-29
63 관리자 2017-03-29
62 관리자 2017-01-31
61 관리자 2017-01-04
60 관리자 2016-12-06
59 관리자 2016-11-01
58 관리자 2016-11-01
57 관리자 2016-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