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死卽生, 我生卽死(아사즉생, 아생즉사)\" (2017년 12월 신앙칼럼)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작성일18-02-06본문
我死卽生, 我生卽死(아사즉생, 아생즉사)
소설가 김 훈 씨가 쓴 <남한산성>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두 달 전 영화로도 나와 많은 관객들에게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1636년 병자년, 12월 14일 인조는 청나라의 침략을 피해 급히 남한산성으로 피신합니다. 그곳에 머무는 47일은 가장 혹독하고, 치욕스러운 겨울이었습니다. 한 겨울이라 가진 것도, 먹을 것도 변변치 못합니다. 그렇다고 나가서 싸울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인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 중에는 종묘와 사직을 위해 결사항쟁을 하다가 장렬하게 죽자는 척화파 김상헌이 있습니다. 반면,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항복해서 살아야 한다는 주화파 최명길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주장 사이에서 인조는 번민을 거듭합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결국 인조는 청나라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하고 맙니다. <남한산성>에 갇혀서 죽음을 기다리는 당시의 들려오는 음성이 지금도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500여 년 전 청나라에 포위된 체 고민했던 인조 임금의 고뇌가 오늘 우리 삶 가운데 그대로 이어집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결정적인 시간이 있습니다. 척화파의 김상헌처럼 죽는 한이 있더라도 대의명분을 위해 바른 길을 가야한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승산이 없는 상황이라면 항복을 하고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화파의 최명길의 입장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대의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있습니다. 자신의 유익과 편안함을 위한 길이 있습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일까요? 과연 오늘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일까요?
죽어야 사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진리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날마다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만 다시 예수님과 함께 부활의 생명으로 피어납니다. 기독교는 죽음으로 기억됩니다. 우리는 생일을 기억하지만 실상은 죽는 날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떻게 죽느냐가 그 인생의 가장 화려한 절정입니다. 내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썩어지는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기쁨으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정신이요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도입니다.
“죽어서 살 것인가(我死卽生), 살아서 죽을 것인가((我生卽死),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오늘 우리도 이 질문 앞에서 결단을 해야 합니다. 잠깐의 편안함과 유익을 위해서 살다가 후회하는 인생을 살 것인가? 지금은 좀 힘들고 어려워도 아름다운 인생의 마무리를 위해 고난 받기를 기뻐할 것인가? 이 질문에 바른 선택을 하는 지혜로운 주의 일군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17. 12
여러분의 섬김이 안두익 목사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