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칼럼_왜곡된 시선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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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작성일14-08-12본문
왜곡된 시선에서 벗어나자!!
우리는 비판과 정죄가 난무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신문을 펴 보면 온통 비판의 글들이 가득합니다. tv 매체도 예외는 아닙니다. 학생들은 교사를 비판하고, 고용인과 고용주들은 서로의 잘못을 비판합니다. 국민들은 지도자를 비난하고, 지도자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한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요즘 정치나 월드컵을 보면 사람들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사람을 세워놓고 그들이 쌓은 한 생을 단 며칠 만에 무너뜨리는 무서운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 월드컵 감독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감독의 지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이런 이야기를 해겠습니까? "감독이 어떤 날은 좋은 감독이다가 어떤 날은 ‘조기축구 감독’만도 못한 사람이 된다"고 말한 것은 한 순간에 쏠리는 여론의 무책임한 것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똑같은 사건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요즘 매스미디어(mass media)를 보며 씁쓸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평생 말의 힘을 실감하며 사는 목사로서 점점 매스미디어(mass media)의 역할이 긍정적인 힘보다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자기가 직접 확인하지 않은 내용을 여과없이 전하는 태도는 결코 성숙한 사람답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미성숙의 부작용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힘든 고의적인 언론의 악의적 보도입니다.
여기에 또한 별 고민없이 따라가는 오늘의 현대인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죄의 오염 속에 빠져 살아가는가를 실감을 하게 됩니다. 죄인은 자극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죄인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죄인은 남의 이야기, 험담을 즐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전하고 검증된 옳은 내용을 담는 바른 언론은 재미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더 많은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라도 자극적이고, 비판적인 부정적인 대자보가 필요합니다. 전후 문맥을 빼고, 자극적인 의미로 문귀를 인용하며 내용 자체를 완전히 왜곡하는 것은 정말 치졸한 행태가 아닙니까? 이로 인해 피해를 본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과 친척들은 한 생을 씻지 못할 오명(?)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무책임하고 혼란스런 시절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제일 뚜렷하게 일어나는 변화는 말의 변화입니다. 말을 전하는 방법도 선하게 변화고, 담는 내용도 정확해야 예수 믿는 사람답다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굴절 된 언론이 통할지 모르나 우리 성도들은 이 장난에 놀아나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그런지 스스로 확인해 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어떤 문맥에서 문제시 되고 있는 말이 나왔는지 전체의 흐름 파악이 더 중요합니다. 한 목사의 설교를 문맥없이 인용하면, 목사 한 사람 이단 만드는 것은 유도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전체의 맥을 잡지 못하고, 성경 한 구절를 고집하면 우린 얼마든지 이단 삼단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 정치계 신문을 도배하고 있는 것이 꼭 이런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합니다. 붓이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은 반드시 긍정적으로만 쓰여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이 왜곡된 시선을 교정해줄 진정한 그 한사람이 우리의 몫이 아닙니까?
2014. 8
여러분의 섬김이 안두익 목사
우리는 비판과 정죄가 난무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신문을 펴 보면 온통 비판의 글들이 가득합니다. tv 매체도 예외는 아닙니다. 학생들은 교사를 비판하고, 고용인과 고용주들은 서로의 잘못을 비판합니다. 국민들은 지도자를 비난하고, 지도자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한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요즘 정치나 월드컵을 보면 사람들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사람을 세워놓고 그들이 쌓은 한 생을 단 며칠 만에 무너뜨리는 무서운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 월드컵 감독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감독의 지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이런 이야기를 해겠습니까? "감독이 어떤 날은 좋은 감독이다가 어떤 날은 ‘조기축구 감독’만도 못한 사람이 된다"고 말한 것은 한 순간에 쏠리는 여론의 무책임한 것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똑같은 사건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요즘 매스미디어(mass media)를 보며 씁쓸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평생 말의 힘을 실감하며 사는 목사로서 점점 매스미디어(mass media)의 역할이 긍정적인 힘보다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자기가 직접 확인하지 않은 내용을 여과없이 전하는 태도는 결코 성숙한 사람답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미성숙의 부작용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힘든 고의적인 언론의 악의적 보도입니다.
여기에 또한 별 고민없이 따라가는 오늘의 현대인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죄의 오염 속에 빠져 살아가는가를 실감을 하게 됩니다. 죄인은 자극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죄인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죄인은 남의 이야기, 험담을 즐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전하고 검증된 옳은 내용을 담는 바른 언론은 재미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더 많은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라도 자극적이고, 비판적인 부정적인 대자보가 필요합니다. 전후 문맥을 빼고, 자극적인 의미로 문귀를 인용하며 내용 자체를 완전히 왜곡하는 것은 정말 치졸한 행태가 아닙니까? 이로 인해 피해를 본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과 친척들은 한 생을 씻지 못할 오명(?)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무책임하고 혼란스런 시절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제일 뚜렷하게 일어나는 변화는 말의 변화입니다. 말을 전하는 방법도 선하게 변화고, 담는 내용도 정확해야 예수 믿는 사람답다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굴절 된 언론이 통할지 모르나 우리 성도들은 이 장난에 놀아나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그런지 스스로 확인해 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어떤 문맥에서 문제시 되고 있는 말이 나왔는지 전체의 흐름 파악이 더 중요합니다. 한 목사의 설교를 문맥없이 인용하면, 목사 한 사람 이단 만드는 것은 유도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전체의 맥을 잡지 못하고, 성경 한 구절를 고집하면 우린 얼마든지 이단 삼단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 정치계 신문을 도배하고 있는 것이 꼭 이런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합니다. 붓이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은 반드시 긍정적으로만 쓰여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이 왜곡된 시선을 교정해줄 진정한 그 한사람이 우리의 몫이 아닙니까?
2014. 8
여러분의 섬김이 안두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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