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요청 앞에 서있는 합신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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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작성일11-05-31본문
이 시대의 요청 앞에 서있는 합신의 자세
< 안두익 목사, 동성교회 >
“하나님 위해 부름받았다는 시각 가지고 전진해야”
먼저 우리 교단이 태동한 지 올해가 30년이 된다니 정말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주님의 각별한 돌보심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더불어 교단을 사랑하는 수많은 분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을 합니다.
현재 우리는 800여 교회가 시대 앞에 건강한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합동신학교라는 건강한 개혁주의 신학적 토양에서 배출 된 목회자들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시골이든, 도시든, 국내든, 해외든 머문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다원주의의 영향으로 절대적 진리가 훼손되고 짓밟히는 정말 암담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폄하하는 엔티 세력들은 한국교회의 부정적인 면을 들추어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이미지는 날개 없는 새처럼 끝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이에 목회 현장에 있는 사역자들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영적인 상황은 사탄이 제철을 만난 듯 날뛰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더 우리를 비참하게 하는 것은 이를 극복해야 할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마치 머리 잘린 삼손처럼 세상 앞에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두 눈이 뽑힌 채 놋줄에 메여 맷돌을 돌리는 모양이 아닙니까?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손놓고 보기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이 오늘날 직면한 위기 앞에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초를 다시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합신은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의 3대 개혁이념의 구현을 통하여 개혁주의 신학을 재확인하고, 그리스도만을 주인으로 섬기는 교회를 세우며, 신앙과 윤리가 일치하는 경건 생활을 정착시키는 일을 생명처럼 여기고 여기에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의 첫 발을 내 딛으실 때 그 30세에 처음 하신 일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그들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6).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목자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목자와 같은 지도자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들은 물론, 수많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산헤드린 관원들도 있었고,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바리새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타가 인정하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실 때 그들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목자들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오히려 그들을 소경이라고 호되게 닦아 세우셨습니다. 육신의 눈이 보지 못하는 자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소경됨은 ‘잘못된 눈’ 곧 ‘잘못된 시각’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무리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할 수밖에 없었고, 기진하여 죽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때 예수님은 12제자를 세운 것입니다. 그저 단순한 12사람의 이름이 아닙니다. 이 12사람의 ‘이름’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는 당시의 소경 같은 목자들, 소경 같은 지도자들과는 구별되는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대하시던 ‘새로운 목자’라는 겁니다. ‘새로운 일꾼, 새로운 리더십’을 말합니다. 그들이 바로 12사도입니다.
이 제자들은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관심을 위해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을 준비시키시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 질 때 그들은 더 이상 연약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자신의 단 하나 밖에 없는 목숨마저 주를 위해 기꺼이 내 놓았습니다. 이들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증거 되는 역사를 보게 됩니다.
이제 합신은 30년이 되었습니다. 지난날을 되돌아 볼 때 우리의 선배들은 정말 복음 하나만을 가지고도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불모지인 시골과 열방을 향해 어디든 주께서 부르시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지식의 모자람 때문에,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교단 산하의 교회마다 느리지만, 사람을 바로 세우는 새로운 시각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르쳤던 결과입니다.
이제 30주년은 성경에서 준비된 사람들이 쓰임 받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의미 있는 시기입니다. 한번 더 우리의 현실을 점검해 보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흔들림 없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합니다.
합신이여!! 이제 이 어두운 세상에 희망의 등불을 비칩시다.
< 안두익 목사, 동성교회 >
“하나님 위해 부름받았다는 시각 가지고 전진해야”
먼저 우리 교단이 태동한 지 올해가 30년이 된다니 정말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주님의 각별한 돌보심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더불어 교단을 사랑하는 수많은 분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을 합니다.
현재 우리는 800여 교회가 시대 앞에 건강한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합동신학교라는 건강한 개혁주의 신학적 토양에서 배출 된 목회자들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시골이든, 도시든, 국내든, 해외든 머문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다원주의의 영향으로 절대적 진리가 훼손되고 짓밟히는 정말 암담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폄하하는 엔티 세력들은 한국교회의 부정적인 면을 들추어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이미지는 날개 없는 새처럼 끝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이에 목회 현장에 있는 사역자들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영적인 상황은 사탄이 제철을 만난 듯 날뛰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더 우리를 비참하게 하는 것은 이를 극복해야 할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마치 머리 잘린 삼손처럼 세상 앞에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두 눈이 뽑힌 채 놋줄에 메여 맷돌을 돌리는 모양이 아닙니까?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손놓고 보기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이 오늘날 직면한 위기 앞에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초를 다시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합신은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의 3대 개혁이념의 구현을 통하여 개혁주의 신학을 재확인하고, 그리스도만을 주인으로 섬기는 교회를 세우며, 신앙과 윤리가 일치하는 경건 생활을 정착시키는 일을 생명처럼 여기고 여기에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의 첫 발을 내 딛으실 때 그 30세에 처음 하신 일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그들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6).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목자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목자와 같은 지도자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들은 물론, 수많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산헤드린 관원들도 있었고,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바리새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타가 인정하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실 때 그들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목자들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오히려 그들을 소경이라고 호되게 닦아 세우셨습니다. 육신의 눈이 보지 못하는 자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소경됨은 ‘잘못된 눈’ 곧 ‘잘못된 시각’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무리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할 수밖에 없었고, 기진하여 죽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때 예수님은 12제자를 세운 것입니다. 그저 단순한 12사람의 이름이 아닙니다. 이 12사람의 ‘이름’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는 당시의 소경 같은 목자들, 소경 같은 지도자들과는 구별되는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대하시던 ‘새로운 목자’라는 겁니다. ‘새로운 일꾼, 새로운 리더십’을 말합니다. 그들이 바로 12사도입니다.
이 제자들은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관심을 위해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을 준비시키시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 질 때 그들은 더 이상 연약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자신의 단 하나 밖에 없는 목숨마저 주를 위해 기꺼이 내 놓았습니다. 이들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증거 되는 역사를 보게 됩니다.
이제 합신은 30년이 되었습니다. 지난날을 되돌아 볼 때 우리의 선배들은 정말 복음 하나만을 가지고도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불모지인 시골과 열방을 향해 어디든 주께서 부르시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지식의 모자람 때문에,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교단 산하의 교회마다 느리지만, 사람을 바로 세우는 새로운 시각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르쳤던 결과입니다.
이제 30주년은 성경에서 준비된 사람들이 쓰임 받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의미 있는 시기입니다. 한번 더 우리의 현실을 점검해 보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흔들림 없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합니다.
합신이여!! 이제 이 어두운 세상에 희망의 등불을 비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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