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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그날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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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5-06-22

본문

그날을 기억하라 신6:20-25. 2025. 6/22 주일 예배 완성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정말 겪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전쟁일 것입니다. 전쟁은 단순히 나라와 나라 사이의 싸움이 아닙니다. 한 가정의 삶을 무너뜨리고, 아이들의 웃음을 앗아가고, 부모와 자녀를 갈라놓는 고통 그 자체입니다. 요즘 뉴스 보셨나요?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도시가 불타고,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어린아이들이 피난 길에 오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총성과 폭탄 소리에 뒤덮인 땅에서 어떻게 평화와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나라도 이런 고통을 겪은 민족입니다. 바로 75년 전, 1950625. 새벽에 들려온 총성과 함께 한반도에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웃이 총을 겨누었고, 가족이 생 이별을 당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피난 길에 오르고, 굶주림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습니다. 그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교회가 무너졌고,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순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평화를 누리고 있지만, 이 평화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기도, 그리고 피와 눈물 위에 세워진 귀한 선물입니다.

 

지금 우리가 편히 앉아 예배 드릴 수 있는 이 자유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지켜낸 나라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현실이 하나 있습니다.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지금의 젊은 세대는 6.25전쟁이 무엇인지 조차 잘 모릅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잊혀지고, 잊혀지면 반복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기억해야 할 것들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우리가 그날을 기억하라는 이 말씀은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미국의 유명한 철학자 산타아나가 말하기를 뼈아픈 과거를 기억할 줄 모르는 사람은 과거를 되풀이하게 된다.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은 경험 속에서 지혜를 배우고, 지혜로운 민족은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역사 안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지를 살피며 오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에 보면

 

 

. 과거를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20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증거와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냐 하거든무슨 말입니까? 여기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은 앞으로 광야를 벗어나 가나안 땅에 살아가야 할 세대를 향한 말씀입니다. 이 세대는 광야를 겪어보지 못한 세대입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고통 속에 살았던 사람들은 전쟁을 아는 세대는 기성세대를 말합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태어나 길게는 40년 이상 광야훈련을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이것이 광야 세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모세가 우려했던 세대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입니다. 이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새로운 세대들이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의 살벌한 생활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를 먹어 본 일이 없습니다. 바위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구경한 일도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지도 못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기적다운 기적을 체험한 일도 없습니다.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전쟁을 아는 세대인 그들의 부모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가나안 문화에 접하게 됩니다. 가나안 문화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왜 우리가 광야에서 받은 율법을 지켜야 하는 지에 대해서 강한 의구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십계명을 외워라. 율법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율법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아무리 강조해도, 광야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해 보지 못한 후손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이렇게 질문할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보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증거와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입니까?그렇게 물어올 것입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고리타분한 율법을 지켜야 합니까?’ 그렇게 항의하며 물어올 텐데, 그 때에 부모들이 그런 후손들에게 분명하고 명확하게 대답을 해주어야 합니다. 모세는 이것이 무슨 뜻이냐 묻거든이라고 질문할 때,

 

 

2.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21

 

우리가 옛적에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애굽에서 바로의 압정에서 430년간 종살이 했었다는 것입니다. 노예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예전에 노예였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말입니까? 부끄러운 과거입니까? 그건 결코 자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면 그걸 자식들에게 자랑스럽게 알려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자식들이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지켜야 합니까?’ 그렇게 물어오거든 가장 먼저조상들이 옛적에 애굽 땅에서 노예 생활했던 사람들이란 사실을 알려주라고 말씀하십니다.이것은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들은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노예생활했던 노예란다하는 말보다는 우리는 자랑스러운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우리는 특별하게 선택된 민족이다그런 것들을 말해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의하면 그런 건 전혀 쓸데없는 자랑일 뿐입니다. ‘우리는 노예 출신이란다그렇게 가르쳐주라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를 언약의 자손인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게 하신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자랑할 그 어떤 것도 자기들에게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종살이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자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우리를 향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가르쳐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6.25 전쟁 75주년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수 백번이라도 들려 주고 싶은 우리의 역사의 한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 예배드리는 우리 가운데 그 전쟁의 고통을 몸소 겪은 분도 계시지만, 대다수는 그 아픔과 상처를 보지 못한 전후 세대가 많습니다. 세월은 이렇게 흘러갔지만, 전쟁의 상처가 정말 깊이 패인 채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의 아픔을 겪는 나라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우리는 다시는 재기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1953년 휴전으로 포성이 멎었지만, 10여년이 지난 1960년대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이 당시의 상황을 잘 녹여 만든 영화가 국제 시장이라는 영화입니다. 10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보았던 이 영화는 대한민국이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이별사, 그리고 아버지 없는 가정의 장남으로 살아야 했던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웃음과 눈물을 버무려 만든 영화입니다. 압록강까지 올라갔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 때 한 가족이 피난길에 오르다 흥남부두에서 미군함정을 타기 위해 목숨을 건 행동을 합니다.

 

당시 이 배는 군수물자 수송용으로 피난민 최대 공간이 13명 밖에 없었다고 함니다. 그런데 선장인 레너드 리우 장군의 통역관이 신실한 그리스도인인데 이분의 설득으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배에 실은 무장 장비를 다 내리고 무려 14000명의 피난민을 실고 거제까지 갑니다. 이 영화에 보면 이 배를 타기 위해 구름떼처럼 모이지 않습니까? 이 영화는요, 그냥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고생과 희생을 고스란히 담은 이야기예요. 주인공 이름이 덕수인데요.이 배를 올라타다 가족 가운데 등에 업은 여동생을 바다에 떨어뜨립니다. 이 바람에 아버지는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장남인 덕수에게 입히면서 아버지가 없으면 네가 家長(가장)이다는 말을 남기고 딸을 찾기 위해 바다 속을 뛰어 들어갑니다.

 

아버지의 그 말 한마디에 덕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자기 꿈도, 하고 싶은 것도 다 내려놓고 오직 가족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남동생이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 결국 서울대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그의 생업인 생선괴짝 수만개를 만들어도 턱없는 동생 학비를 벌기위해 독일에 광부를 지원합니다. 말이 광부이지 지옥 같은 작업환경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돈을 법니다. 집도 마련하고 이젠 좀 사는가 해서 어렸을 적 소원이었던 마도로스(선장)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해양대학교 시험을 치르고 합격통지서를 받게 되지만 그 기쁨도 순간이었습니다, 여동생 결혼문제와 가족들의 편안한 생활을 위해서 학교도 포기하고 다시 월남전에 가서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돈을 버는 그 모습은 가난하고 못 살았던 우리들 세대와 아버지 세대의 애환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평생 자신의 인생도 꿈도 버리고 오직 가족의 행복과 가장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거운 멍에를 짊어지고 생사의 현장을 넘나들었던 주인공 덕수의 인생이 바로 오늘을 있게 한 여기 아버지들의 세대입니다. 이 영화는 세계에서 인도 다음으로 가장 못살았던 전쟁 이후의 우리의 부모 세대가 얼마나 많은 희생으로 이 나라를 일구었는 가를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6.25전쟁 때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6.25의 참상을 보십시오. 전쟁을 3년 1개월을 했습니다. 6.25전쟁 때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전쟁에서 전사한 우리나라 군인들만 14만여 명에 달하고,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 참전자들 중에는 약4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가운데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는 중국과 2000년 이상 관계를 맺어왔지만 미국 선교사들과 같은 도움을 준 중국인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지금도 일부 상식 밖에 사람들은 자식들을 군대 안보낼려고 하지만, 6.25전쟁 당시 미국을 보세요. 이 전쟁에서 미국의 33대 아이젠하우어 대통령도 아들을 잃었습니다. 벤프리트 장군도 아들을 잃었으며,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도 아들을 잃었고, 워커 중장은 자식과 함께 참전했다가 전사했습니다, 24사단 딘 소장은 전쟁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 곰마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민간인들 중에는 약37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온 강토가 피로 물든 처참한 전쟁이었습니다. 요행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피난길을 나선 사람만도 24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쳤고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희생과 헌신이 세월 속에 묻혀서 점점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 모세가 가나안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우리가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가를 들려주기를 원했습니다.

 

 

. 이제 우리가 살아야 할 몫 -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24)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이 말씀은 모세가 가나안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잊고 살고 있진 않습니까? 이제 포성이 멎은 지 75년이란 세월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잊게 합니다. 얼마 전에 갤럽 인터내셔날에서 이런 조사가 있었습니다. ‘나라의 위기가 왔을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가의 위기 때 나가서 싸우겠다라고 답한 사람이 42%로 나타났습니다. 이 수치는 전세계 평균 61%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끄러운 통계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남북의 대치 상황은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상태이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안전 불감증에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정치나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영적으로도 타락의 깊은 수렁에 빠진 조국의 현실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에서 아낌없이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셔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희생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 우리와 이웃 사이에 모든 막힌 담을 허무는 은총이 되었습니다. 이제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도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밖에 무궁화를 보셨나요? 얼마나 근사합니까? 지난 주부터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국화가 아닙니까? 사실 무궁화는 장미꽃 같은 정열은 없습니다. 벚꽃 같은 화려함도 목련화 같은 우아함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백합화 같은 수려함도 코스모스 같은 청순함도 없습니다. 무궁화는 왠지 촌티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궁화가 마음에 끌립니다. 무궁화는 은근과 끈기의 꽃입니다. 하루의 첫 시간인 새벽 4시쯤 피기 시작해서 질 때는 다섯 꽃잎이 하나가 되어 얌전히 오므라들어 꼭지 채 떨어집니다. 다음날 아침에 수없이 피어 있는 무궁화는 전날의 꽃이 아닌, 모두 새롭게 피어난 꽃들입니다. 매일 모두 새로운 꽃을 100여 일 동안 끈질기게 이어 피우는 꽃입니다. 또 토지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잘 자랍니다.

 

저는 이 무궁화꽃이 괜히 우리나라 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는 931번 외세의 침략을 받고도 살아난 전 세계 유일한 민족입니다. 은근과 끈기를 상징하는 대한민국 국화로 무궁화는 적절합니다. 무엇보다 무궁화를 사랑하는 것은 샤론의 장미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무궁화의 영어 이름(rose of sharon)은 샤론의 장미, 샤론의 꽃이라는 뜻입니다. 찬송가 89장에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맘에 사랑으로 피소서에서 샤론의 꽃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2:1)에서 사론의 꽃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상징합니다.애국가에서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소서로 생각이 되니까 이 무궁화가 더 사랑스럽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기도해야 합니다. 저 북녘땅에 2500만 내 동포가 하루 속히 자유를 찾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정신못차리고 당쟁을 일삼는 여야가 조국을 위해 하나된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교회들이 이 땅에 자유를 위해 목숨 바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그 빚을 갚는 길은 바로 전도입니다. 깨어 복음들고 온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을 만들어야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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