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감사주일>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 살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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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5-11-16본문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살전 5:18. 2025. 11/16. 추수 감사주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복된 날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살전5:18절입니다.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짧은 한 구절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바라시는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의 물량주의와 과학 만능주의의 물결 속에 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풍요로움과 인간의 지식만을 신뢰하다 보니, 우리의 신앙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감사의 자리를 불평과 염려가 차지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감사의 뿌리가 깊은 신앙을 돌아봐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본문에 보게 되면, 당시 데살 로니가 교회는 환난의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에는 환난이나 고난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자주 등장합니다. 1:6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 많은 환난 속에 있었다. 2:2에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2:14에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3:7에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특히 살전 5:2절 상반절에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들이 겪었던 고난을 겪고 있지는 않지만, 영적으로는 더 큰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소유와 과학적 지식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세상 속에서, 세상적 부유는 있는 것 같지만, 우리의 영혼은 점점 피폐해지고 메말라갑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에, 우리는 다시금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세워야 합니다.
Ⅰ. 감사는 '선택'이 아닌 '명령'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매우 강한 어조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러분이나 저나 이 말씀을 읽으면 제일 먼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범사에'라는 말말입니다. 감사하라고 하는 말에 '범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으면 우리는 왠지 모르게 부담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범사'라는 말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어떤 일을 당하든지 무조건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강도 높은 의미를 가진 말씀을 읽으면서 가책 받지 아니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 그 가운데는 목사인 저 자신이 가장 많은 가책을 받을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를 못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항상 감사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가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려고 무척 노력을 하고 또 감사도 많이 하지만 이 본문 말씀이 요구하는 선에는 아직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저 자신이 숨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담을 느낍니다. 저같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잘못하면 이런 말씀도 그저 쉽게 이야기하고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남의 말 할 때는 쉬운 겁니다. 자신이 지키지 못해도 가르칠 때는 쉬운 겁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지키지 못해도 가르칠 때는 쉬운 겁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남의 이야기는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할 때에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하고 설교하기는 쉽습니다. "항상 감사하십시오." 하고 얼마든지 큰 소리로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좀 더 진지하게 이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난 주 수능 시험을 치루었습니다. 재수하는 자녀들이 많았습니다. 얼마나 초조하겠습니까? 어느 가정에서 자녀가 자꾸 시험에 떨어지니까 집안에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떨어져다는 소리만 나오면 난리가 납니다. 한번은 식탁에서 숱가락이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그 집에 시어머니가 야 숱가락에 땅에 붙었네 하더랍니다. 자녀를 둔 가정은 이 문제가 얼마나 민감합니까? 부부가 정신없이 살아왔는데 이제 좀 누릴만하니까,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쳐다보는 남편이 과연 감사할 수 있을까요? 오랜 지병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아무리 기도하고 부르짖어도 고쳐주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병은 점점 더 깊어 가는 자신을 보면서 과연 그 입에서 감사가 나올까요? 평생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야 될 어린 장애아인 자녀를 갖고 씨름하는 부모가 그 입에서 정말 감사가 나올까요?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가 어느 날 치매에 걸려 횡설수설하고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뀐 모습을 보는 현실 앞에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이력서를 수십 통 써 가지고 다니면서 취직을 해보려고 하지만 회사에서 면접 한번 하지 못하고 연거푸 퇴짜를 맞는 젊은이의 입에서 과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 나올까요? 내가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정말 감사할 수 있을까요? 저나 여러분이나 이런 입장에서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이 말씀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비현실적인 말씀입니다. 이상론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은 적당히 보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태도로 이 말씀을 넘겨도 괜찮을까요? 결론부터 먼저 말씀 드리자면, 절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Ⅱ. 감사는 내가 주안에 있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여기 여러분, 바울은 단순히 “감사하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감사하라”라고 했습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표현이에요. “그리스도 안에서”란 말은 예수님과 연합된 상태, 즉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과 하나 된 삶을 의미합니다. 이 말이 신앙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여러분, 바울이 살전 3:9에서 말한것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9절에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로 말미암아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이 말은 그냥 편안한 집에서, 따뜻한 방에서 한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핍박을 받고, 쫓겨 다니고, 사실상 감금과 같은 환경 속에서 이 편지를 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자리에서 터져 나온 말이 원망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여기 어떠한 감사로 보답할꼬’라는 표현은, 헬라어 뉘앙스를 살리면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감사가 터진다”, “말로는 갚을 길이 없다”라는 뜻이 담겨 있어요. 그냥 ‘감사합니다’ 정도가 아니라, “이건 내가 어떻게 갚아낼 수 있는 감사가 아니다!” 이런 폭발적인 감탄사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바울의 환경은 감옥 같았고, 길이 막혀 있었고, 몸도 자유롭지 않았어요. 상황만 보면 이런 감사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이런 말까지 쏟아냈을까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바울은 환경 안에 있지 않고 예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ἐν κυρίῳ) — 이것이 바울의 삶의 중심이었어요. 자신은 묶여 있지만, 주님 안에서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바울은 환경을 보지 않고 예수님의 역사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는 겁니다. “주님… 제가 이 은혜를 무슨 말로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이건 갚을 수 있는 차원의 감사가 아닙니다!” 즉, 환경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보기 때문에 원망 자리에서도 감사가 터지고, 감옥에서도 찬양이 나오고,막힌 자리에서도 기쁨이 솟아난 거예요.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습니다. 환경 안에 갇혀 있으면 문제를 만날 때 마다 불평과 원망이 나오지만, ‘예수 안에 있으면 ‘어떠한 감사로 보답할꼬’가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 이
Ⅲ.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그냥 “하나님은 여러분이 감사했으면 좋겠다”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헬라어로 보면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살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즉, 감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작정하신 삶의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왜 감사가 하나님의 뜻일까요?
감사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으로 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감사는 우리의 시선을 환경에서 하나님께로 돌리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만 보면 원망이 나오지만, 예수 안에서 보면 감사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상황에 눌려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일, 주님의 손길을 보며 살길 원하십니다. 더 나아가 왜 감사가 하나님의 뜻입니까? 감사는 하나님의 역사를 여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면 믿음이 자라고, 믿음이 자라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으로 이끄는 통로예요. 여러분, 그래서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이 길로 걸어오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초대이고 보호이고 축복입니다.
오늘 바울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길 바랍니다. “주님, 상황 때문에 감사하는 게 아니라 예수 안에서 감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향해 준비하신 뜻입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감사하십시오. 그 감사가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이제 추수감사주일을 준비하면서 지난 1년을 돌아보십시오. 저는 감사는 기적의 씨앗이라는 말씀을 이 강단에서 수없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감사는 억지로 해도 좋습니다. 저의 경험에 결코 손해가 없습니다. 그 감사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추수 감사주일에 드릴 감사헌금 봉투에 보면 5가지 감사를 쓰라고 했습니다. 한해를 돌아볼 때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안다면 마땅히 감사가 일어나지 않겠나요?
감사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힘든 시대 먹고 살 것 때문에 걱정하고 한숨이 깊어만 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큰 저주는 먹을 것을 얻지 못한 ‘목마름’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름’입니다. 이것을 마음의 변비가 생긴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권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감사해보면 좋겠다”고 조언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영혼의 순환을 회복시키는 영적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몸에 변비가 있으면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막혀서 고통하듯, 마음의 변비가 있는 사람은 은혜가 들어와도 흘러가지 못합니다. 감격이 막히고, 찬양이 멈추고, 감사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감사는 그 막힌 영혼의 통로를 뚫어내는 성령의 힘입니다. 감사는 환경이 아니라 관점의 문제입니다.
감사는 형편이 아니라 믿음의 반응입니다. 감사는 결과가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눈물이 있을 때도, 실패가 있을 때도, 이유가 없어도 감사하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미 구원의 감격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는 억지로 짜내는 감정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서 다시 터져 나오는 구원의 눈물입니다. 오늘 주님은 여러분에게 “감사를 애원하거나 애걸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감사하라!” 명령하십니다. 그 명령 속에는 회복의 약속이, 그 순종 속에는 기적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으로 막힌 감사의 통로가 뚫어지고, 메마른 영혼에 은혜의 강물이 다시 흐르기를 축복합니다. 다 같이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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