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를 향하여(33) 아직도 가야할 길 -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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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5-11-25본문
행23:12-16, 22-23. 제 33강. 2025. 11/23
조선시대 때 ‘추노’라는 직업을 가진 자들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도망친 노비를 쫓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조선 시대에 추노꾼들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아십니까? 추노는 그냥 도망친 사람을 찾아오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잡히면 거의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추노꾼들은 먼저 도망친 노비의 발목과 손목을 쇠사슬로 묶었습니다. 때로는 도망간 노비라는 표시를 하려고 얼굴이나 어깨에 글자를 새기기도 했습니다. 한 번 추노꾼에게 찍히면 산으로 숨든, 강으로 가든, 동굴에 숨어도 끝까지 쫓아와서 기어이 잡아내는, 그래서 한 번 추노의 눈에 찍히면 살아서 돌아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할 정도로 무섭고 잔인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잔인한 추노꾼들처럼 오늘 본문 속 바울을 죽이려는 사람들, 40명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하고 따라붙는, 추노꾼들입니다. 12-13절 말씀을 보십시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이들은 단순한 폭도가 아니었습니다. 14, 15절을 보면, 이들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까지 찾아가 바울을 죽이기 위한 치밀한 '매복 계획'을 세웠습니다. 바울을 공회로 내려오게 유인한 후, 길목에서 암살하겠다는 잔인하고 무서운 계획이었습니다. 이 엄청난 위기 앞에서, 바울 한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을 향한 이 무서운 역사는 단순히 한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확장을 막으려는 어둠의 세력의 총체적인 공격이었습니다. 소위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바울이 너무 안쓰럽지 않습니까?
주님을 위해 많은 것을 버린 바울이 아닙니까?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버렸는데 성경은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고난의 현장 앞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여러분, 우리 삶에 왜 이런 고난이 오는지 이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일이 생기나…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건가…” 정말 이런 마음 들때가 있습니다. 가끔 교우들의 가정을 심방하다 보면 그 고통이 얼마나 깊은지 느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게 있습니다. 고난이 온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실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증거입니다.
I. 은밀한 계획도 드러내시는 하나님 (16, 22-23)
16절에 누가 등장합니까?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타이밍이자 간섭입니다! 누구를 사용하셨습니까? 이름도, 직분도 없는, 바울의 조카(생질)입니다. 성경에 딱 한 번 등장하는 이 청년이, 어떻게 그 살인 결사대가 동맹을 맺고 이야기하는 내용을 듣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장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용하셔서, 이 무서운 음모를 "매복하여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게 하셨습니다.
23절을 보세요. 천부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바울을 가이샤라에 있는 로마 총독에게로 보내기롤 결정합니다. 바울이 계속 예루살렘 로마 수비대 영내에 있게 되면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위험이 많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큰 은혜를 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지키실 때 천사도, 지진도, 큰 기적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한 평범한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이 청년이 천부장에게 달려가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밤에 예루살렘을 떠나 가이사랴로 옮겨집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길이 열립니다.
예루살렘에서 가리사랴까지는 약 100Km 되는 먼 거리였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천부장은 유대인들의 눈을 피해 밤 9시에 바울을 호송할 군인 470명을 준비시킵니다. (보병 2백명, 기병 7십명, 창병 2 백명, 짐승들) 이 대규모 인원은 예루살렘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 수비대 전체 인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인원이었습니다. 그만큼 천부장은 바울로 인해 발생한 사건을 중대한 사건으로 인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과연 우연일까요? 바울의 조카가 하필 그 시간에 그 이야기를 듣게 되고, 또 그것이 로마 군대의 최고 책임자에게까지 연결된 이 모든 과정이 그저 운이 좋았던 걸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철저히 계산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명자인 바울을 보호하시기 위해 아주 세밀하게 움직이신 것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살아납니까? 큰 영웅이 등장한 것도 아니고, 군대가 먼저 움직인 것도 아닙니다. 아주 평범한 생질 하나, 조카 하나가 우연히 그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통해 소식이 천부장에게 전달되고 결국 바울은 로마 군인의 호위를 받으며 살게 됩니다. 여러분, 이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큰 기적만 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아주 작은 사람, 아주 평범한 순간, 우리가 예상하지도 못한 통로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자꾸 “하나님, 왜 침묵하십니까?” 묻지만 하나님은 이미 움직이고 계십니다. 우리가 못 보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바울을 죽이려던 그 살벌한 계획 때문에, 역설적으로 바울은 로마 정예 군인 수백 명의 철통같은 호위를 받으며 안전하게 가이사랴로 이동하게 됩니다. 바울을 가두었던 감옥이 오히려 그를 보호하는 가장 안전한 요새가 되었고, 그를 죽이려던 위기가 오히려 로마로 향하는 사명의 길을 활짝 여는 지름길이 된 것입니다. 한 사명자 바울을 위해, 마치 한 나라의 VIP를 호위하듯, 이방 권력을 총동원하여 완벽한 보호막을 쳐 주신 것입니다. 유대인 40명이 감히 덤빌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명자에게 주시는 '피할 길'입니다.
II. 피할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22-23)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말씀처럼,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여기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시험당하기 전에가 아니라,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십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칼이 목 앞에 올 때,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다리며 흔들립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늦습니까?” “왜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때가 되면 문을 연다. 내가 준비한 방법이 있다. 네가 보지 못해도 이미 일하고 있다. 오늘 우리의 위기가 무엇이든 기억하십시오. 피할 길은 내 힘으로 찾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시는 길입니다. 바울처럼 갇혀 있어도, 길은 위에서 납니다. 그리고 그 길은 언제나 사람을 통해,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가장 필요한 순간에 열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한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이 본문이 주는 뜻이 무엇입니까? 25년도 우리의 시작이 어땠습니까? 지금 우리의 삶에 대차대조표를 보셨나요? 여러분 가운데는 한해를 순탄하게 지내온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연말에 내 손에는 노력한만큼 쥐어진 것도 었고 그렇다고 해서 미래가 잘 보여짖지도 않는 그런 환경에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다윗처럼 그의 생애에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골짜기를 피해 간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골짜기를 지나가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를 없애주신 게 아니라 그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손이 이끌어 가신 것입니다. 사명자의 길이란 이런 길입니다. 평탄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계산이 안 되어도, 결과가 불안해도, 우리가 붙잡는 건 상황이 아니라 주님의 손입니다.
지금 어떤 골짜기를 지나고 계십니까? 건강의 골짜기, 관계의 골짜기, 교회의 골짜기,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버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가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길을 여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보지 못해도 주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내 삶이 막힌 것 같아도 주님은 이미 피할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내게 맡긴 일, 그것이 사명입니다. 우리는 다짐해야 합니다. 이 사명의 길을 계속 가겠습니다.” 사명자는 길이 보여서 가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멈추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제 다시한번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히12:1절에 보면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라톤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바로 결승선입니다. 우리 믿음의 여정에도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며 저 천국까지 달려가는 것입니다. 마라톤의 경로에는 경사진 언덕이 있고, 춥거나 더운 날씨 때문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특히 심리적인 고통이 따르고 체력이 바닥이 나는 문제도 생깁니다. 우리 믿음의 여정에도 장애물이 있습니다. 믿음을 흔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고, 사탄의 유혹이 있고, 영적 침체가 있습니다. 그러나 왜 달립니까? 상이 있다는 점입니다.
마라톤 완주를 하면 메달을 받거나 완주 확인증을 받습니다. 그리고 성취감과 보람을 느낍니다. 믿음의 여정에도 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상을 주십니다. 우리가 다 이루었다는 보람과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마라톤은 42.195킬로라는 살인적인 긴 거리를 달려야 합니다. 달리는 도중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이 드러나 포기하고 싶은 때가 여러 차례 나타납니다. 이 때 이것을 인내하며 이겨내야 합니다. 믿음의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지속되는 과정입니다. 때로는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게 되고 또 때로는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게 됩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여러 차례 나타납니다. 이때 이것을 인내하며 견디고 이겨내야 합니다. 그 길에 바울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반드시 우리의 인생의 길을 아시고 피할 길을 내게 하신 그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III. 성찬의 은혜 안에서 사명을 완수하는 힘을 얻자
여러분, 오늘 우리는 상례식을 갖습니다. 특히 성찬은 단순한 예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보혈과 몸을 직접 받는 믿음의 자리, 주님의 죽으심과 사랑을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새기는 사명을 회복하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성찬 앞에 설 때 우리는 예수님의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잔을 받습니다. 그 피는 우리에게 ‘괜찮다’라고 말하는 피가 아니라, “너는 이 피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죄인이었다”고 말하는 피입니다. 그래서 성찬 앞에서는 “주님, 제가 또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다시 주님 앞에 돌아옵니다.” 이렇게 마음 깊은 회개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성찬은 회개하는 사람에게 열리는 은혜의 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대합니다. 그 몸이 찢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바쁘고 지치고 현실이 무겁지만, 이 떡을 손에 들 때마다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자격이 없지만 주님이 찢기셨기에 오늘 제가 살았습니다.” 성찬은 감사의 자리입니다. 감격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성찬은 주님의 죽으심만 기억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분의 부르심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기념한다는 것은 다시 살아내겠다는 뜻입니다. 성찬은 다짐의 자리이고 결단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찬 앞에 설 때, 바울을 기억하십시오. 무서운 음모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그 담대함. 그 담대함의 근원은 예수님과의 연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앞에 허무하게 주저 앉아 패배속에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성찬을 받으며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이 시대의 위기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과 하나 되어 이 길을 끝까지 걷게 하옵소서. 성찬의 은혜로 당당하게 살게 하옵소서.”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이 음성을 붙잡고 성찬의 은혜로 다시 일어나고, 어둠 속에서도 당당하게 사명을 감당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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