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기쁜 소식 | 눅 2: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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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5-12-21본문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성탄 예배에 오신 모든 분을 환영합니다. 예수 탄생을 축하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할렐루야!! 최근 교수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변동불거(變動不居)'를 뽑았다고 합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뜻이죠. 정말 그렇습니다. 어제의 기술이 오늘 구식이 되고, 사람들의 마음도 상황도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립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 입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 무엇입니까? “불안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 나라, 이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병은 불안입니다. 확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변하고 요동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까요? 언런 힘든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가 맞고 있는 성탄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 우리는 2천 년 전, 밤하늘의 별빛 아래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들려온 한 소식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세상은 '변동불거'하여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만, 하나님은 그 변하는 역사 한복판에 '영원히 변치 않는 기쁜 소식'을 던지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 기쁨이 왜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시면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이 메시야의 탄생에 누가 초대를 받았습니까? 여기 8절에 보십시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누가 나옵니까? ‘목자들’입니다.
그 당시에 목자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가장 천민 중에 하나였습니다. 남의 양떼들을 밤새 지켜 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제 이름 석자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무식자들이요, 그들은 종종 율법을 지키기 어렵다는 이유로 부정하게 여겨졌고, 증인으로도 채택되지 못할 만큼 사회적 신분이 낮았습니다. 들에서 밤을 지새우며 궂은 일을 하는,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성탄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영접한 사람의 숫자는 그 당시 불과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소수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행한 성탄의 자세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기뻐하고 영접했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천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시당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자, 짓밟힌 자, 실패한 자, 병든 자, 죄인으로 몰린 자, 이런 사람들이 왕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가 오심을 기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음에도 어느누구하나 눈길 한번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다 외면하는 밤에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하늘의 소식을 전해 줍니다.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탄생하신 그분은 ‘그리스도 주시라’고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이 소식이 얼마나 중요한 소식인지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Ⅰ.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0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여러분, 천사가 전한 이 소식은 그냥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는 덕담이 아니었습니다. 원어의 의미를 보면 이것은 '메가톤급 기쁨'이자, 인생의 모든 결핍을 끝내는 '승리의 선포'였습니다. 당시 목자들은 로마 황제의 명령 한마디에 호적하러 가야 하고, 세금을 바쳐야 하는 '황제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세상은 황제가 복음이라고 말했지만, 정작 그들의 삶에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진짜 복음은 로마 궁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유에 누운 저 아기에게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를 두렵게 하는 '세상의 소식'들은 참 많습니다. 경제 뉴스, 건강 검진 결과, 불안한 미래... 이런 소식들은 우리 마음을 '메가톤급 불안'으로 몰아넣습니다. 하지만 오늘 성탄의 아침에 이 원어의 의미를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에게 '메가스 카라', 즉 세상 그 어떤 슬픔보다 더 큰 기쁨을 주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진정한 승전보인 '유앙겔리온'을 들려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구원했다! 내가 너의 인생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이 압도적인 기쁜 소식이 여러분의 모든 두려움을 내쫓기를 축복합니다. 여기 보면 예수의 탄생이 “왜 성탄이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까?”
1.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는 임마누엘이기 때문입니다.
마1:23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임마누엘이라는 의미 속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히13:5의 말씀에 보면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여기 과연이라는 말은 영어로는 ‘never’입니다. '결코'라는 말입니다. 또 하나는 언제나 우리를 보호하시고 도우시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잡아 주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손을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살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 하면서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하려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내가 힘들 때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도와주셔서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도우심을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무척이나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동행은‘ 같은 길은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마음으로 가는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주님의 손을 붙잡고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과동행할 때 우리의 삶은 진리를 따르는 삶이 됩니다. 주님과동행하는 삶에는 불의함이 없습니다. 죄악이 우리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삶에 생명과 평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네 인생에서 우리가 손잡고 동행하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2. 죄 사함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21)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죄에서 구원을 받는다는게 얼마나 엄청난 지 아십니까? 우리나라가 구제역 때문에 이 나라가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있습니까? ‘구제역’라는 균이 어느 한 농가에 퍼지면 그 농가의 소나 돼지는 모조리 땅에 파묻어 죽입니다. 그 옆 마을, 인근지역 수 킬로미터 안에 있는 소난 돼지는 모두 죽임을 당하고, 흙에 다 파묻습니다. 그 균은 사람을 통해, 자동차를 통해, 바람을 통해 전국적으로 삽시간에 퍼지게 때문에 살아있는 생명을 아까워도 다 죽입니다. 살 처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청정 지역으로 일컫는 안동의 한 농가는 자식처럼 길러오던 멀쩡한 소들을 손 한번 써보지 못한 채 다 땅에 묻고 망연자실한 모습이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제역이 심각하지만 우리 인간의 죄는 이런 구제역보다 더 무섭습니다. 롬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6:23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 인간을 보시고 구원받아야 될 존재로 선언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말씀에 의하면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거침없이 이 사실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죄의 값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이 심판을 면하려면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십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독생자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8:32절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성탄의 가장 큰 선물인 것입니다.
14절을 보세요. 그 기쁜 소식은 예수가 우리에게 오시는데 그 예수를 통해 세상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아기의 탄생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간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은 잃어버린 자녀를 되찾는 것입니다. '변동불거'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늘 하나님을 잊고 살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독생자를 보내심으로 그분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예와 사랑이 온전히 나타났기에 이것은 '최고의 영광'입니다. 동시에 성탄은 이 땅에 진정한 평화(에이레네)를 가져온 사건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불안해합니다. "내년엔 어떻게 살지? 내 인생은 괜찮을까?" 이런 두려움과 염려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우리를 흔듭니다.
지금 천사가 말한 이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죄로 인해 파괴되었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는 '샬롬'의 평화를 의미합니다. 이 평화는 모든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아기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기 위해 화목 제물로 오셨습니다. 이 평화는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온 선물입니다. 세상은 불안과 갈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진짜 평화는 상황이 좋아져서 오는 게 아닙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내 마음 구유에 좌정하실 때 시작됩니다. 세상은 '돈'이 있어야 평안하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예수'가 있어야 평안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우리가 처한 현실은 여전히 춥고 고단한 들판 같을지라도, 14절의 찬양처럼 우리 마음속에 � �� '하늘의 평화'가 임하면 우리는 웃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의 실체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풀리니(영광), 내 삶의 모든 엉킨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하는 것(평화)", 이것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성탄의 선물입니다.
Ⅲ. 기쁨의 소식을 들었으면 즉시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15-16절)
천사들이 떠난 후 목자들이 서로 말합니다.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그리고 성경은 그들이 '빨리 가서' 목자들에게는 지켜야 할 양 떼가 있었습니다. 밤이슬을 맞으며 생업에 종사하던 그들이 양들을 두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가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더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잠시 내려놓는 용기를 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베들레헴은 어디입니까? 단순히 교회 마당을 밟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 자존심 때문에 가지 못했던 화해의 자리,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봉사의 자리, "나중에 하지 뭐" 하며 덮어두었던 말씀의 자리로 '빨리' 달려가는 것이 바로 성탄의 자세입니다. 목자들이 베들레헴에 가서 결국 아기 예수를 만났을 때 그 기쁨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들은 직접 보고 체험했습니다. 기독교는 '듣는 종교'에서 시작해서 '보는 종교'로 완성됩니다. 남이 전해준 예수가 아니라, 내가 직접 만난 예수, 내 삶의 구유에 찾아오신 주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여러분, 목자들이 그 밤에 베들레헴 골목골목을 뒤지며 아기 예수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달려갔을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너무나 귀한 소식을 들었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이 바로 이것입니다. '현상 유지'에 머물러 있는 신앙에서 벗어나 '베들레헴으로 달려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변동불거'의 세상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우리 발걸음을 주춤하게 만듭니다. "지금 이 상황에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그냥 이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라고 말하게 합니다. 하지만 성탄의 복음을 만난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세상이 요동쳐도 우리는 주님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이번 성탄절, 여러분의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면, 용서라는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십시오.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면, 소망의 구유 앞으로 빨리 달려가십시오. 나 혼자만 즐거운 성탄이 아니라, 소외된 이웃과 이 기쁨을 나누기 위해 낮은 곳으로 달려가십시오. 목자들이 '빨리 가서' 예수님을 만났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게으름과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주님께로 달려갑시다.
오늘 우리 주변에 고통당하는 이웃은 분명 이 기쁜 소식을 들어야 할 분들입니다. 노숙자라든지, 이땅에 지체 장애자들, 그리고 홀로 외롭게 사는 독거노인들, 어찌 그뿐입니다. 해외에 지진과 자연재해로 고통당하는 이웃이 지금 우리의 이 기쁜 소식을 들어야 할 긴박한 상황에 있는 분들입니다. 예수님처럼 섬길 때 비로소 우리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로다"라는 찬양의 주인공이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5년 한 해, 참으로 변동불거한 세상 속에서 고군분투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세상은 변해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 낮은 곳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찾아오신 그 주님이, 지금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메가톤급 기쁨'을 가슴에 품고, 승전보인 '유앙겔리온'을 입술로 선포하며, 주님이 계신 베들레헴으로 기쁘게 달려가는 복된 성탄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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