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끓어오르는 열정으로 미래를 재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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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6-01-11본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희망찬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는 단순히 달력이 바뀌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허락하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어제의 실패와 후회, 미완의 일들로 끝나는 시간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새로운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출발선에 우리가 다시 서게 된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한 우리의 각오는 분명해야 합니다.
더 바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더 주님께 가까이 가는 삶,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삶,
열심을 잃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뜨거운 마음을 다시 회복하는 삶입니다.
이 새해의 첫 걸음을, 사람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드려진 각오와 헌신으로 시작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이 예배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붙드는 거룩한 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확신을 갖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해서 경지에 오른 사람을 우리는 고수, 달인, 또는 장인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모두 한 분야의 전문가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한 단계 더 나간 것이 광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광인은 글자 그대로 ‘미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옥한흠 목사님이 제가 처음 제자 훈련을 처음 받을때에 그때 설레임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목사님은 그 예리한 눈빛으로 거기 모인 목회자들을 향해 ‘당신들은 지금 무엇에 미쳐 있습니까?’ 첫 마디를 던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미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미쳤다'라고 말할 때도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정신병이 들었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옳다고 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밖에 다른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명을 거는 것을 말합니다. 가슴에 있는 불을 아무도 끌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영혼을 살립니까? 영혼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사람입니다. 영혼을 바라보면 눈물이 흐르고 “저 영혼을 건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오늘 이 아침! 예배를 드리러 나온 여러분은 무엇에 대해서 미치도록 목말라하십니까? 인생은 어떤 목마름을 갖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집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 중의 하나가 목마름의 힘입니다. 어떤 큰일을 이룬 사람을 보면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더 많이 목말라 했던 사람들입니다. 목마름이 있어야지 성취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부흥을 합니까? 부흥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저 밤낮으로, “하나님,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땅의 황무함을 보시옵소서! 부흥의 불길을 보내주시옵소서!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해 주시옵소서! 영혼을 살리고 교회가 일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탄원하여 엎드린 교회가 있습니다. 부흥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 목마름을 사용해서 부흥을 주십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을 보십시요! 1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여기 지금 수문앞 광장에 모인 수많은 백성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그토록 소원하던 무너진 성벽을 52일 만에 재건하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그동안 폐허화 되어 버려진 채 방치된 성벽을 쌓으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음모와 협박이 있었습니까? 그 악조건 속에서도 동틀 때부터 별이 뜰 때까지 일하였는데, 백성의 절반은 한 손에 창을 들고 일을 했습니다. 이런 고생을 해서 다시 재건된 성벽 앞에 서로 얼싸안고 눈물이라도 흘리며 기뻐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이것 때문에 기뻐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견고한 성벽을 쌓았다 할지라도 성벽이 자신들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백성들은 이 모든 일이 자기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든 성벽을 수축하는 과정 가운데 그들이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일임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영적 부흥에 대한 목마름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를 초청합니다. 에스라 목사님을 모시고 영적 대각성 부흥성회를 수문앞 광장에 엽니다. 오늘 우리는 이 수문앞 광장에서 일어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 부흥의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Ⅰ.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해야 합니다.
여기 3절을 보십시오. “수문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 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당시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의 백성들은 적어도 3만에서 5만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누가 모이라고 소집한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모든 백성들이 모였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모였습니다.
2026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련된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바로 이 '끓어오르는 말씀에 대한 갈망'입니다. "주여, 내 식어버린 심령에 말씀의 불을 던져 주셔서 다시 끓어오르게 하옵소서!" 이 기도가 터져 나올 때 침체된 우리 신앙의 재건은 시작됩니다. 이들의 갈망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입니다. 에스라는 나무로 만든 강단에 서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백성들 앞에서 낭독했습니다. 본문 4절에 의하면 에스라는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읽어주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강단’은 ‘성곽’이나 ‘망대’로 번역된 단어입니다. 그러기에 “나무 강단”이라는 말은 나무로 만든 높은 망대라는 말과 같습니다. 여러분, 망대가 뭐하는 곳인지 아십니까? 성곽 위에 세워진 망대는 파숫군이 있는 곳입니다.
파숫군이 혹시 적군이 쳐들어오지 않나 망을 보기 위해서 서 있는 곳이 망대입니다. 그러기에 망대에서 파숫군이 큰 소리로 외치는 말은 그 성읍의 생존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기에, 망대 위에서 외쳐진 말에는 누구든지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합니다. 망대 위에서 외쳐진 말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생명과 직결된 아주 중요한 외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지은 나무 망대”라는 말은 비록 임시로 만든 망대, 나무로 만든 보잘것 없는 망대일지라도 그 위에서 선포된 말씀은 그들의 생명을 살리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지금 수문 앞 광장에 모인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가를 보여 줍니다.
5절 말씀에는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책을 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어섰다고 했습니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일어서서 그것도 새벽부터 오정까지 대략 6시간을 서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앉아서 혹은 누워서 들어도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백성들은 말씀에 대한 목마름에 대한 갈증으로 불타올랐습니다.
느헤미야 8장 18절에 보면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얼마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말씀을 알아듣는 사람은 설교가 아무리 길어도 지루해 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열정이 있고 감동이 있으면 지루하지 않습니다. 연애를 하는 사람들 보세요. 별것도 아닌데 그렇게 감동하고 그렇게 좋아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빨리 갑니다. 시간을 때우려고 연애하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항상 말씀에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시42:1-2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119:131절에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다윗은 항상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주의 말씀을 먹으려고 입을 열고 헐떡였습니다. 진정한 부흥은 말씀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목마름은 영혼이 건강하고 하나님이 부흥을 주신다는 신호입니다.
Ⅱ.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십시오.
부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기는 듣는데 소리로 들을 때가 많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칭찬받는 교회였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태도가 중요합니다. 옆 사람이 들어야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내가 듣고, 내가 은혜 받고, 내가 변화되어야 할 말씀입니다. 수문앞 광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백성들의 태도를 보십시오. 말씀이 선포될 때 ‘아멘 아멘’으로 응답했습니다. 6절을 보세요.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어지면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아멘’은 하나님 말씀을 받아먹는 숟가락입니다. 이것은 설교하는 목사에게 힘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임을 내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아멘입니다. 입술에 아멘이 많은 사람은 말씀을 경청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또한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울었습니다. 말씀이 그들의 삶의 죄를 드러나게 했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보여주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울면서 반응합니다. 얼마나 백성들이 말씀 앞에 흐느껴 울었던지 말씀을 선포하던 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9절에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여기 ‘울지말라’는 의미는 히브리어로 단순히 눈물을 찔끔 흘리는 게 아니라, '통곡하다', '큰 소리로 울부짖다'라는 뜻입니다. 마치 장례식장에서 곡을 하듯 가슴을 치며 우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러분, 오늘 느헤미야 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흘린 이 '통한의 눈물'은 사실 성경 곳곳에서 위대한 영적 전환점마다 나타났던 은혜의 신호탄이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큰 죄를 짓고 나서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들었을 때를 기억하시죠? 시편 6편을 보면 그는 '내가 밤마다 침상을 적시며 내 요를 적신다'고 고백합니다. 왕의 권위로 덮으려 했던 죄가 말씀 앞에 드러나자, 그는 자존심 다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통곡했습니다. 그 통한의 눈물이 있었기에 다윗은 다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회복될 수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 최근에 성경을 읽다가 멈추어 서서 감격하며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메시지를 듣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무릎 꿇고 기도해 본 적 있습니까? 없다면 우리 신앙은 어느새 메말라 버린 것입니다. 병들어 버린 것입니다. 깨달음이 더 이상 없고 삶에 변화도 멈추어 버린 것입니다. 이젠 정말 내 텅빈 영혼 그래서 허수아비 모양 세상 풍습에 맥 없이 흔들거리며 사는 이 모습 때문에 울어야 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이 눈물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 눈물에 회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말씀이 여러분 삶에 절대적인 가치와 영향력이 있다고 믿습니까? 아니면 교양이나 마음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교양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의 정도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삶의 진정한 변화를 원하신다면, 가정이 새롭게 회복되기를 원하신다면, 이 민족이 부흥하기를 원하신다면 말씀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꾸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할 생명의 말씀인 것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Ⅲ. 말씀에 대해 응답해야 합니다.
말씀을 깨닫고 울면서 회개하던 백성들은 회개에서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듣고 삶의 진정한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10절 말씀처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 됨을 믿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 삶의 목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자신들의 방패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신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죄 가운데 머물러 괴로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갔습니다.
12절 보시면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드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 여기 “밝히 앎”이란 단순히 말씀의 내용을 지적으로 이해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분별하다, 깨닫다, 통찰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며, 말씀이 귀로만 들린 것이 아니라 마음과 삶 속에 분명히 해석되고 적용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들으며 단순한 정보 습득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레위인들이 말씀을 해석하여 뜻을 설명하자,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자기 삶과 연결하여 이해하게 되었고, 그 결과 말씀은 부담이 아니라 기쁨과 힘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슬픔에 머물지 않고 돌아가 기쁨으로 음식을 나누고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밝히 앎”이란, 말씀이 머무는 지식이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깨달음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의 나를 어떻게 살게 하는지를 분명히 아는 상태입니다. 참된 부흥은 바로 이 밝은 앎에서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동성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매 주일마다 습관적으로 말씀을 듣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주님의 말씀 앞에 아멘으로 영광을 돌리고, 말씀 앞에서 내 죄와 상한 모습을 바라보며 울어본 적은 언제입니까? 여호와의 말씀이 내 삶에 힘이 되고 능력이 됨을 경험 적은 언제입니까?
나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함으로 우리의 메마른 심령에 ‘말씀의 부흥’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먼저 함께 새벽부터 모이기에 힘쓰십시오. 그리고 불방망이같은 말씀이 나에게 임하시기를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말씀 앞에 반응하십시오. 그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붙들고 순종의 삶을 사십시오. 그 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고, 든든한 바위가 되심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메마른 심령위에 은혜의 단비가 내리고,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쳐서 새롭게 변화되고 회복되는 놀라운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주여! 내 영혼에 부흥을 주옵소서 !’ 기도 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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