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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감사 - 우리의 삶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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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5-06-29

본문

마태복음 6:25-33. 



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2025년도를 꼭 반을 살았습니다. 이 반년을 살아오면서 정말 많은 것을 겪으며 살았습니다. 탄핵정국을 맞아 대통령을 새로 뽑는 정말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살았습니다. 국외적으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여파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안에 감사하는 삶보다 미래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삶이 일상화가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럴 때 이제 전반기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맥추 감사주일을 통해 새로운 반년을 감사로 시작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주심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 생각을 합니다. 맥추감사주일은 고속도로의 휴게소와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온 인생의 광야길에서 잠시 멈춰 서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길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셨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힘든 순간도 많았고, 가슴 아픈 일도 많았고, 견디기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그러나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났을 때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 보셨습니까? 눈을 뜬 후에 침대에서 내려와 걸어서 화장실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 보셨습니까? 힘든 일상이지만 오늘도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나 일터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 보셨습니까? 오늘도 숨을 쉬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를 만나서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계절의 변화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의 삶에 당연한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소소한 것들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 어느 것도 누리며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산상수훈의 한 부분입니다. 여기에 보면 우리의 삶에 감사를 못하게 하는 최대의 적에 대해서 예수님은 말씀을 하십니다.

 

 

. 염려하지 말라 25

 

25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여기 본문은 무엇을 강조합니까? 바로 염려라는 단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염려가 무엇입니까? '염려'마음이 나뉘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염려는 우리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음의 분산 현상입니다. 이 염려는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우리의 마음을 바짝 마르게 합니다. 누가 복음21:34절에, 말세가 되면 성도들이 빠지기 쉬운 악이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방탕이요, 둘째는 술 취하는 것이요, 세 번째는 염려라고 합니다. 우리는 방탕은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술에 취하고 알코올에 중독되면 벌써 인간다움을 이미 포기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염려가 방탕과 맞먹는 악이라고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그만큼 염려는 해로운 것입니다. 누구든지 돈에 마음이 빼앗기면 이 염려가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영과 육을 망칩니다. 해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 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27절에 유명한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하므로 그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느냐' 키 작은 사람에게 염려 주사를 놓는다고 해서 한번에 한자나 자라는 것을 보셨습니까? 아무도 염려해서 키가 자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본문은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네 생명을 한자나 더 늘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염려해서 생명을 1년 연장할 수 있고, 2년 연장 할 수만 있다면 염려만 잔뜩 하고서 1000년도 살 수 있지 않습니까? 누구나 그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이렇게 염려는 무익한 것입니다.

 

 

어느 상담학자는 재미있는 표현을 했습니다. 염려한다는 건 뭐냐. '아직 내 앞에 오지도 아니한 시간과 장소를 무언가로 가득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마음이 혹시로 가득찬 것이다.' '혹시 암에 걸리지 않을까, 혹시 자동차 사고가 나지 않을까, 혹시 실직하지 않을까, 혹시 시집 못 가면 어쩌나, 혹시 학교 간 애가 안 돌아 오면 어떻게 하나' 이런 식으로 아직도 오지 아니한 시간과 장소를 가득 채우는 것이 염려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6개월간에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십시다. 감사하는 삶이었습니까? 아니면 염려하는 삶이었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 염려를 묶어 놓고 살 수 있습니까?

 

 

.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여기 30절 중반절에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염려하는 그의 제자들을 보고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보십시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저 새는 심지도 않고 추수도 않고 곡간에 쌓아 두지도 않았어. 그러나 너희 천부께서 다 기르시고 먹이시지 않느냐." 또 염려하는 제자들 보고 말씀하십니다. 유대나라 백합화는 새빨간 것이 얼마나 이쁜지 모릅니다. "들에 저 백합화를 봐라. 저렇게 아름다운 백합화에 누가 저렇게 옷을 잘 입혔냐. 하나님이 입히셨다."

 

 

30절을 보십시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플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공중에 새도 먹이시는 하나님, 들에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이신데 하물며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겠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위로와 격려, 그리고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진다는 말씀입니다. 이 아침 묻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어느 누구 예외없이 다 연약한 자들이었습니다.다 죄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구원받을 만한 수준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구원에 관한 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죄인이었을 때, 좀더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진노 아래 있을 때""원수 되었을 때"에 그런 소망이 없는 우리에게 모든 악과 죄와 모든 범죄를 예수님의 십자가로 깨끗이 씻으시고, 이제는 죄와 흠이 하나도 없는 거룩한 자기 자녀들처럼 날마다 보시면서 그 머리터럭도 다 세시고, 눈동자 같이 지켜주시고, 어디를 가나 동행하시고 모든 기도를 귀담아들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우리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공중에 새도 저렇게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소중한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절대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리고 염려의 늪에 빠진 자들을 향해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호되게 닦아 세웁니다. 이 믿음을 가지면 염려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세상이 주지 못하는 감사가 일어납니다. 여기 보세요 32절에 '이런 것은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여기 이런 것은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모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것들 마져’ '있어야 할 줄을 아느니라.'

 

 

그러므로 31절에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주님께서 내게 필요한 것을 나보나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 다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감사절을 맞이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신앙의 모드를 바꾸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염려에서 감사함으로. 이것이 우리 삶에 늘 상 일어나는 염려로부터 해방이 되고 일상의 감사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것이 건강한 신앙의 삶입니다.

 

 

이제 다음 주면 교회는 맥추 감사절을 지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1년 중 중요한 명절 3개를 지정해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6:16절에 보면, 유월절, 맥추절 그리고 초막절입니다. 이 절기를 지킬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맥추감사절은 지난 6개월을 지켜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맥추 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왜 지키라고 말씀하셨습습니? 이날은 유월절이 지난 후 7주 만에 지키는 절기라 하여 칠칠절, 오십 일째 되는 날이라 하여 오순절, 첫 열매를 거두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절기라 하여 초실 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뿌린 씨가 열매되어 그들의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그 첫 열매에 대한 감사를 의미합니다. 구약 맥추절의 첫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신약 맥추절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여 신령한 첫 열매, 교회를 탄생시키셨습니다. 맥추절은 애굽에서 나온지 50일째 되는 날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그날에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심으로 그 백성을 광야교회로 조직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교회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모일 때마다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주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신약교회를 우리에게 주셨고 이 교회를 통하여 행복을 누리고 살아가며 이 교회 안에서 하늘가는 복을 배우게 되며, 하나님의 가족으로써 살아가는 이 행복감 이것을 감사하는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이 맥추감사 주일은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 사람인가를 한번 점검해 본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뜻이 있는 절기라고 생각합니다. 감사를 잘하면 영적으로 상당히 건강하고 성숙한 신자가 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감사를 잘 모르는 사람에 비해 감사를 잘 아는 사람이 그만큼 건강하고 성숙합니다. 영적인 면뿐만 아니라 육적인 면에서도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건강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긴 역사를 살펴보면 정말 불행하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이 3절기를 제대로 지킨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귀찮다는 이유로 절기가 있다라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수백 년을 보낸 암흑기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때를 따라 적절한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이야기해 줍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전철를 밟는 불행한 사람이 되어선 안됩니다. 감사가 우리에게 체질화되고 습관화 되도록 계속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염려의 늪에서 벗어나 감사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정말 유명한 말씀인데, 이 말씀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것을 구하고 살아갑니다. , 건강, 좋은 직장, 행복한 가정, 자녀의 성공... 이 모든 것들이 다 우리에게 소중하고 필요한 것들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이 모든 것들보다 먼저 구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게 뭘까요? 바로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여기서 '먼저'라는 말이 참 중요해요. 이건 단순히 '우선순위를 높여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건 우리의 삶의 방향, 삶의 목적 자체를 결정하는 거예요.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느냐에 대한 질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통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의 유익, ''의 행복, ''의 성공이 가장 중요하죠.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시선을 ''에서 '하나님'으로 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먼저 구하라는 거죠.

 

그럼 '하나님 나라'는 또 뭘까요?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여기, 우리의 삶 속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예요.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향한 미움이라는 사단의 통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이 통치하는 경험을 합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삶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불의한 일을 보고 정의를 추구할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의가 임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겁니다.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면, 물질에 대한 탐욕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눔과 사랑이 우리 삶에 통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며,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 때 우리 삶과 공동체 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따라 의롭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죄와 멀리하고, 정직하고, 공정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내 생각, 내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그의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렇게 우리가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이 모든 것'은 바로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의식주 문제, 걱정하는 염려들, 세상적인 모든 필요들을 말합니다.

 

 

 

놀랍지 않나요? 우리가 굳이 애써서 세상 것을 쫓아가지 않아도, 하나님을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건 마치 비유하자면, 우리가 물줄기를 따라가면 저절로 물을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아요. 우리가 물을 직접 퍼 올리려고 애쓰기보다, 물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그분이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흘려보내주신다는 거죠. 우리가 돈을 쫓아가면 돈에 대한 염려가 계속될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이 돈을 통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시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우리가 건강을 쫓아가면 건강 염려가 우리를 묶을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건강도 책임져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감사는 우리에게 가야 할 길을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기대하게 만들어줍니다. 감사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하늘로부터 주어진 새로운 능력이 덧입혀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예수님께 힘을 더해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힘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광야 길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전에 걸어왔던 광야 길과는 다른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주신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감사로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아 힘든 순간도 넉넉히 이기며 사십시다. 광야길은 내 힘을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는 길입니다. 걸어온 길도 그렇거니와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 함께 힘차게 남은 길을 염려 대신 감사로 달려가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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