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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를 향하여 (36)- 끝나지 않은 복음의 역사 행28: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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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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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 마지막 장면 앞에 서 있습니다. 행전 16절에 보면,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이 짧은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들어가니입니다. 여러분, 이 말속에 얼마나 많은 눈물과 기다림과 좌절과 기도가 담겨 있는지 아십니까? 바울에게 로마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로마는 바울의 꿈이었습니다. 로마로 가는 것은 바울의 사명이었습니다. 로마는 복음의 관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잘 보십시오. 바울은 관광객으로, 초청 강사로, 대형 집회 인도자로 로마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죄수의 몸으로 들어옵니다. 온갖 풍상을 겪고 로마로 왔는데 단 한마디 들어가니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이 들어가니라는 단어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와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붙잡아야 할 믿음의 태도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동안 설교한 사도행전을 마치는 시간을 갖습니다. 참 아쉬움도 많고 좀 더 이 부분을 잘 담았더라면 하는 후회도 있지만, 우리는 1여 년 동안 사도행전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가는 꿈을 나누는 시간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 속에 꿈을 갖고 사느냐, 아니면 꿈이 없느냐 였습니다. 꿈이라는 것은 우리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결정짓는 너무 너무 중요한 사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꿈을 먹고 산다는 것, 꿈을 위해서 뛴다는 것,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우리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우리의 희망찬 삶을 살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꿈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해 줍니다. 꿈이 큽니까? 그 사람은 대인입니다. 꿈이 작습니까?그 사람은 소인입니다. 꿈이 고상하면 그 사람도 고상하고 꿈이 천박하면그 사람도 천박해집니다. 꿈이 선하면 삶이 선해지고 꿈이 악하면 삶도 악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꿈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꿈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물음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나에게서, 인간에게서 온 꿈이냐 아니면 하나님에게서 온 꿈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고 미래를 얘기합니다만, 그 모든 꿈과 미래는 다 인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진짜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는 것입니다.

 

 

삼중고의 고통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던 헬렌켈러에게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앞이 보이지 않는 생활보다 더 불행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때 헬렌켈러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꿈이 없이, 비전이 없이 생활하는 것입니다.”

 

 

. 인간의 꿈이 하나님의 시간 안에 이루어지다 16

여기 16절에 들어가니라는 단어는 단순한 단어가 아닙니다. 자신의 평생을 이 짧은 단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단순한 '결국'이나 '드디어'를 넘어선 그냥 "도착했다!"라는 사실 전달이 아닙니다. 바울의 지난 여정을 돌아보면, 이 단어 속에는 엄청난 고생과 역경이 농축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자유로운 몸으로 여행 온 게 아닙니다. 체포당해서, 죄수의 신분으로, 배를 타고 왔습니다. 긴 재판 과정, 끊임없는 유대인들의 방해와 음모가 있었고요. 가는 도중에는 생사를 넘나드는 엄청난 바다 폭풍(유라굴로)을 만났습니다. 배가 부서지고, 표류하고, 멜리데 섬에 도착해서도 독사에 물리기도 뻔했습니다. 이 모든 절망적이고 불가능해 보이던 상황을 다 뚫고! 마침내, 눈앞에 현실로 펼쳐진 겁니다.

 

 

바울이 이처럼 로마로 오기까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고후11:23-27절을 잠시 묵상해 봅시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태장으로 삼십구 대를 다섯 번 맞았으며,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헐벗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추웠으며..." 이것은 단순히 고통의 목록이 아닙니다. 이 기록은 바울의 삶이 복음을 위한 '살아있는 순교' 그 자체였음을 보여줍니다. 왠만하면 포기할 법도 한데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바로 그 순간, 그는 로마로 가고자 하는 꿈을 갖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113절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러분에게도 복음의 열매를 맺고자 여러 번 가고자 하였으나 지금까지 막혔도다.”

 

가고 싶었습니다. 너무나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길은 계속 막혔습니다. 아시아에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붙잡혔습니다. 가이사랴에서 2년을 억류당했습니다. 배를 타고 오다 풍랑을 만났고 멜리데 섬에서 난파를 겪었습니다. 여러분, 이 정도면 포기해도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길이 맞다면 왜 이렇게 막히는 겁니까?” 그러나 성경은 오늘 이렇게 선언합니다. “마침내 로마에 들어가니

 

 

학자들은 바울이 30세에 예수를 만난 뒤 70에 순교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바울은 행 13장에서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이방인 선교에 나선 후 순교할 때까지 약 30년동안 선교여행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3번에 걸쳐 선교여행을 떠났고 마지막에는 죄수로 로마에 재판을 받기 위해 12000km의 먼 거리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통편도 없는 그 당시 이 여행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 바로 꿈 때문이었습니다. 20:24절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성공입니까? 그것은 방향을 잃게 만드는 가짜입니다. 가정들에게 묻습니다. 자녀교육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그것만이 전부라면 자녀는 결국 방황합니다. 복음을 심어 줄 때에야 비로소 자녀들의 비전이 바로 섭니다. 복음은 오늘 우리의 인생 나침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아침, 묻습니다. 세상에 남부러울 것이 없는 세상의 것을 한때 가졌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젠 죽음의 그림자가 그 앞에 드리우는 현실에서도 조금도 기죽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진실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 때문이 아닙니까?

 

 

20:22를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자신은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죽을 줄 알며 가는 여행을 포승줄에, 철사줄에, 수갑에 매여 하지만, 바울은 성령에 매여 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억지로 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 여행을 하지만, 바울은 자발적으로 감사함으로 그 여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사각오의 자세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요? 평안한 일상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는 그저 위인전을 읽듯 감동만 받고 끝내도 되는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지연될 수는 있어도, 취소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는 달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에도 아직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는 했는데 응답이 없고/ 준비는 했는데 길이 열리지 않고/ 충성은 했는데 결과가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우리의 가는 길을 막지는 않았습니까? 그러나 오늘 말씀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오늘은 아니어도, 지금은 아니어도,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응답이 옵니다.

 

.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30-31

사랑하는 여러분, 드디어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에 이르렀습니다. 바울은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로마에 도착했고, 우리가 살펴본 대로 셋집에 갇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셋집에서의 2년이, 바울의 선교 여정 중 가장 중요하고 역동적인 시간이 됩니다. 30-31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영웅적인 모습을 발견합니다. 갇힌 몸이었지만, 마음은 열렸습니다. 바울은 셋집에 '갇혀' 있었지만, 그의 문은 닫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셋집은 당시 로마의 지도층 인사들, 유대인들, 그리고 자신을 지키는 로마의 정예 경비병들이 드나들던 복음 전파의 '황금 교차로'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손목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지만, 그의 입술에는 쇠사슬이 없었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두려워했던 것은 매 맞음이나 투옥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담대함이, 복음의 능력을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31절의 표현은 사도행전 전체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거침없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멋집니까! 이 단어는 헬라어로 '아콜뤼토스(akōlytōs)'인데, '방해받지 않고', '아무도 막을 수 없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이런 담대함과 거침이 없는 복음 증거가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왠만한 사람 같으면 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은 현실 앞에서도 당당한 모습니다.

 

 

세계적인 암권위자 김의신 박사는 미국 최고권위의 MD 암센터 종신교수이고, 두 차례나 미국최고의사로 뽑힐 정도로 인정받는 분입니다. 이분이 가장 치료하기 힘든 암환자로 한국의 기혼여성을 꼽았습니다. 그 이유로 암 판정을 받으면 일단 직장부터 그만둔답니다. 마치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비장하게 치료에 임한답니다. 생존확률이 50%라고 말하면 외국 사람들은 자기가 그 안에 들 것을 생각하고 희망을 갖는데 한국 사람들은 죽을 50%에 들 것 때문에 걱정한답니다. 게다가 기혼여성들은 자기 몸 걱정만 해도 힘들 텐데 내가 죽으면 남편은 어떻게 사나, 아이들 시집장가는 누가 어떻게 보내나염려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분이 말하는 암치료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는 것입니다. 차라리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배짱 좋은 사람, 깡패기질이 있는 사람이 잘 낫는답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랍니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들 그들은 담대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면역력이 높아진답니다. 자기가 기적적으로 치료된 사람 여럿 봤는데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확인해 보니 이들에게 면역력이 다른 환자에 비해 무려 천배나 높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믿고 하나님께 맡기고 담대하게 나갈 때 암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 힘들게 하는 일들도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 사도행전 은 끝났지만 복음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은 여기서 끝납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바울의 죽음도 기록되지 않고 재판 결과도 나오지 않고 결론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하나님 나라와 그 주제인 예수 그리스도이지, 하나님에 의해 쓰임 받은 바울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도 어떤 한 사람이 박수를 받거나 높아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랑하되 사람을 우상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지나치게 공경하고 우러러보는 것은 지양해야 할 태도입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숨겨두십시오. 희미해지십시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의 역사는 하나님 나라, 그리고 그 주제이신 그리스도만이 높아져야 합니다.

 

 

셋집에서 시작한 이 순결한 역사가 300여 년 후 제국 전체를 뒤덮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어 제국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흘러오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어떤 장애도 이 복음을 묶어 두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바울을 폭풍으로 묶어두려 했고, 독사의 공격으로 묶어두려 했고, 감옥에 집어넣어 묶어 두려 했지만 그는 꿋꿋하게 그 묶인 자리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기록했습니다. 로마의 감옥에서 그의 옥중서신이 탄생했습니다.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가 옥중서신으로서, 후대에 남겨진 주옥같은 글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대단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지금 있는 그 자리가 작은 자리면 작은 자리에서, 찌그러진 자리면 또 찌그러진 자리에서 맡기신 일들을 묵묵히 해 나가길 원하십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역사적 사명을 가장 훌륭히 감당하는 길입니다. 반드시 목사나 선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어떤 형태를 갖추어야 하나님 나라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강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삶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마음껏 주의 나라를 일구어 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그리스도만이 높아지도록 하는 밀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행전은 28장에서 끝나지만 복음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다음 장 29장은 우리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가질 자세는 분명합니다. 섬김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주어진 자리에서, 찾아오는 사람을 품고, 담대하게 복음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어렵지만, 내 처지 때문에 침묵하지 마시고 바울은 자신을 다 내어 준 것처럼 우리 주변에 널부러져 사는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나누는 향기가 드러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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