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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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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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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12:11. 2026. 1/18

 

 

제가 며칠 전에 아주 오래된 빚바랜 제 옛날 설교 한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 유치하기 짝이 없는 설교였는데 그 당시 많은 분들이 그 말씀에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저는 너무 부족해서 설교 한편을 준비하기 위해 한 밤 중에 한강에 나가 원고를 들고 외치기도 하고 삼각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은혜를 입게 해 달라고 참 힘을 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성경을 보는 시야도 넓어졌고, 그리고 이곳 저곳 불려 다니면서 설교도 하고 있습니다만, 뭔가 나에게 눈물이 없는 마른 설교를 자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목사에게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한편의 설교를 위해서 잘 전해야 하지만, 눈물로 준비한 설교를 강단에서 증거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부족한 종을 위해 그 기도 부탁드립니다. 요즘 한국교회를 아픔이 참 많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누워서 침뱉기 하는 것 같아서 고통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 조국교회의 문제는 목사에게 많은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 교회 교인들도 여기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복음에 대하여 설교를 하면 다 알고 있는 것을 또 한다고 하며 불감증 현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나는 이미 예수 믿는 사람이기에 저 복음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닫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에 대한 설교를 들어도 가슴은 늘 냉랭합니다.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합니다. 또한 도전도 받지 못합니다.

 

 

여기 모인 우리들은 어떤가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저 복음은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만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안 믿는 사람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믿는 사람들도 항상 들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살아 있는 교회는 복음의 설교를 자주하는 교회입니다. 물론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는 설교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열정과 구원의 감격이 없는 상태의 윤리는 율법적인 쪽으로 흘러가게 되며 또한 인본주의의 사상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만약 예수님에 대해 설교를 들을 때 나와는 상관 없다. 이것은 이미 다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의 감격이 식어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사람이야 말로 이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할 사람입니다. 우리가 처음 믿을때에는 아주 뜨겁습니다. 구원이 감격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믿음의 열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고 미지근해지는 경우들이 참 많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7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중에서 사데교회에 대한 책망이 강하게 나옵니다. 바로 영적인 미지금함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15-16절에서 이렇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오늘날 크리스천도 교회들도 시간이 감에 따라 이렇게 미지근해지면서 영적인 퇴보를 가져옵니다. 고목이 되어갑니다. 보이기에는 큰 나무 같지만 이미 생명이 떠나버린 고목처럼 되어가는 것이지요. 또 화석처럼 됩니다. 변화하거나 발전하지 아니하고 어떤 상태에서 돌처럼 굳어 버린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들이 많지만 이렇게 화석화되어가고 고목화되어 가는 것을 방지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방법을 없을까요?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을 가슴에 새겨야합니다. 복음은 생명입니다. 복음이 떨어진 곳에는 생명의 싹이 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희망찬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를 지키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올 한 해 우리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음성은 명확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가 구원을 '종착역'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구원은 목적지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앞부분에서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면한 뒤, 그 구체적인 실천 지침으로 오늘 11절 말씀을 제시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이 짧은 한 절에는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에서 어떠한 자세와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2026년 새해를 어떻게 뜨겁게 살아낼 것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 부지런함으로 영적 나태함을 극복하십시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바울은 가장 먼저 '부지런함'을 강조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지런함은 단순히 세상적으로 바쁘게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에 대한 '신실함'이자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 모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년 특새를 할 때 느헤미야를 묵상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눈물로 기도한 뒤 곧바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그는 왕의 술 관원이라는 안락한 지위를 내려놓고 황폐한 땅으로 달려갔습니다.

 

 

느헤미야의 부지런함은 위기 속에서 더욱 빛났습니다. 대적들이 비웃고 살해 위협을 가할 때도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와 그 일꾼들이 "한 손에는 병기를 잡고 한 손으로는 일을 하며" 밤낮없이 성벽을 쌓았다고 기록합니다(4:17). 잠을 자지 않고 옷도 벗지 않을 정도로 그는 부지런했습니다. 그 결과, 불가능해 보였던 성벽 재건을 단 52일 만에 완공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영적 게으름은 사탄이 우리 영혼을 잠들게 하는 가장 무서운 마취제입니다. "나중에 하겠다", "형편이 나아지면 하겠다"는 변명은 우리를 영적 침체로 몰아넣습니다. 느헤미야처럼 한 손에는 기도를, 한 손에는 사명을 붙들고 부지런히 움직이십시오. 새해에는 예배에 부지런하고, 말씀 앞에 부지런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부지런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불로 마음을 뜨겁게 유지하십시오

두 번째 지침은 '열심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여기 열심을 품고라는 표현은 단순한 성격적 열정이나 인간적인 근면을 말하지 않습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이 표현은 성령으로 끓어오르라, 성령 안에서 불타오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우리에게 의욕적으로 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사로잡혀 불붙은 삶을 살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나약한 존재입니다. 환경 앞에서 쉽게 주저하고, 현실의 벽 앞에서 쉽게 타협하며, 시간이 지나면 처음 가졌던 사명과 감격을 잃어버립니다. 그렇기에 신앙인은 성령 충만이 없이는, 성령의 불이 없이는 복음을 위해 살 수 없습니다. 사명은 결단으로 시작되지만, 사명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지속됩니다.

 

 

이 진리를 가장 처절하게 고백한 사람이 바로 선지자 예레미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마다 조롱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심합니다. “다시는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전하지 않겠다.” 그러나 곧 이어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20:9절에 내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성령의 불이 그의 심령 안에서 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열심을 품고의 실체입니다. 억지로 하는 사역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태. 명령에 끌려가는 신앙이 아니라, 성령의 불에 밀려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교회의 위기는 사명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프로그램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성령의 불이 식어버린 것이 진짜 위기입니다. 교회가 성령에 이끌리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그것은 주를 섬김이 아니라 사람의 일에 머물고 맙니다. 성령의 불이 없으면 봉사는 부담이 되고, 섬김은 의무가 되며, 복음은 무거운 짐이 됩니다. 여기서 바울은 열심을 가지라고 하지 않고, “열심을 품으라고 말합니다. ‘품다는 말은 잠시 붙잡는 것이 아니라, 안고 놓지 않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드는 감정이 아니라, 삶의 중심에 간직하는 태도입니다. 성령의 불을 잠깐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품는 신앙입니다.

 

올해 우리의 표어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라면, 이는 더 많이 하라는 구호가 아닙니다. 더 애쓰라는 채찍도 아닙니다. 이 표어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너는 지금 무엇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가?” 의무입니까, 습관입니까, 책임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성령의 불입니까? 여러분의 영적 온도는 몇 도입니까? 신앙생활이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해졌다면, 다시 성령의 불을 구하십시오. 내 안의 열정이 식으면 모든 헌신은 짐이 되지만, 성령으로 마음이 끓어오르면 고난조차도 기쁨이 됩니다. 예레미야처럼 멈출 수 없는 거룩한 열정으로 새해를 태워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를 섬기십시오

"...주를 섬기라" 부지런함과 뜨거운 마음은 결국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를 섬기는 일'입니다. 여기서 섬기다라는 말은 단순히 교회 일을 돕는 차원의 봉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섬기다는 의미는 종이 주인에게 전적으로 속하여 살아가는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의 열심은 나의 성공이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것이어야 합니다.

 

바울이 그의 사역에 있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부부가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소개합니다. 이들은 평범한 평신도였고 천막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목적은 오직 '주를 섬기는 것'에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이들을 가리켜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던 자들"이라고 칭송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집을 예배 처소로 내어주었고, 생업의 현장을 복음 전파의 전초기지로 삼았습니다. 그들에게 직장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사역의 현장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섬긴다'는 것은 종이 주인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만 성도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분의 뜻을 받드는 것이 진정한 섬김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여러분의 삶 전체를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십시오.

 

 

오늘 오후에 우리 교회와서 간증하는 "남보라 자매의 삶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이자 화려한 조명 아래 있는 남보라 자매가, 왜 낮은 곳으로 향했는지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자매님은 본인이 가진 영향력과 시간을 오직 '주를 섬기는 일'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특히 남보라 자매님 부부가 지금 헌신하고 있는 곳을 보십시오.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소외되고 외로운 노숙인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곳, 때로는 냄새나고 거친 그 현장에서 부부가 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퍼주며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자매님의 마음속에 오늘 본문이 말하는 '끓어오르는 열심(Zeontes)'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이것은 '계산 없는 섬김'입니다. 세상은 투입한 만큼 얻기를 바라지만, 자매님 부부는 주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그저 거저 드리는 삶을 택했습니다. 노숙인 한 분 한 분을 대할 때,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둘째, 이것은 '함께하는 헌신'입니다. 성경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처럼, 남보라 자매님 부부 또한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부부가 합심하여 낮은 곳을 향할 때, 그곳은 더 이상 비참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잔치 자리가 됩니다.

 

 

셋째, 이것은 '삶이 곧 예배'가 되는 모습입니다. 자매님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주님을 섬기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진짜 인생의 목적은 가장 보잘것없는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보라 자매님의 간증이 우리에게 도전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큰일을 해야만 열심인 것이 아닙니다. 자매님 부부처럼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내가 가진 작은 것을 가지고, 소외된 이웃을 주님 대하듯 섬기는 것이것이 바로 2026년 우리 교회가 꿈꾸는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성도의 삶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오늘 남보라 자매님 부부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품읍시다. '나도 저렇게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고 싶다', '나도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통로가 되고 싶다'는 거룩한 갈망이 여러분의 가슴에 불처럼 일어나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6년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의 시간입니다. 느헤미야처럼 영적 게으름을 떨치고 부지런히 사명의 성벽을 쌓읍시다. 예레미야처럼 성령의 불로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 멈출 수 없는 열정으로 나아갑시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삶의 모든 현장에서 오직 주님만을 왕으로 섬깁시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이 말씀이 올 한 해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가는 나침반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뜨거운 가슴으로 주를 섬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이 시대의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시고, 우리 교회와 가정에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열심을 품읍시다! 주를 섬깁시다! 이 거룩한 행진에 동참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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